이란이 지난 1월 16일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로 국제사회에 복귀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극심한 종교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졌던 중동사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은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대국이면서 중동 내 최대규모의 내수시장인 데다가 고급 노동력도 풍부해 중동 내 종파갈등과 서방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중동문제를 푸는 데 있어 핵심 플레이어의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의 자원정책으로 인해 사우디와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은 반면, 미국과 이란은 핵 협상 타결로 인해 해빙무드로 접어들었고, 이번 해제조치로 인해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 등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면서 중동 내 새 맹주자리를 넘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될 경우,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1월 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에 국교단절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사우디와 이란은 1400년에 걸쳐 반목해온 이슬람교 두 종파의 종주국이며 대형 외교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립해온 대표적인 앙숙관계다. 사우디는 무슬림 중에서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 맹주국가로 1980년대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호메이니가 사우디의 건국이념을 두고 이단이라고 비난하면서 3년간 국교가 단절된 적이 있다. 1987년에는 사우디 메카 성지순례에서 이란인 275명 등 400여명이 숨지자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사우디 외교관 한 명이 대사관 건물에서 추락해 숨지자 양국은 국교를 단절했었다.
1991년 국교 회복 이후에도 둘의 관계는 평행선을 달렸다. 특히 예멘과 시리아의 사태에서도 시아파 후티 반군이 이란의 도움으로 수니파 예멘 정부를 공격하자 사우디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내전양상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시리아에서는 이란이 시아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반면 사우디는 수니파 반군들을 지원하는 등 둘의 관계는 사사건건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최근 이란 핵협상에서도 사우디는 미국에게 불쾌감을 표시하며 반대해 왔다. 이란 역시 제재 해제 이후 원유생산량을 하루 50만 배럴로 늘리면서 원유 수출가격을 1배럴에 55~60센트로 낮춰 유가하락으로 국가재정 위기에 처한 사우디를 더욱 궁지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새해 들어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사우디가 국내 시아파 지도자 등 47명을 테러용의자와 함께 처형하면서 시아파 국가들이 이에 강력 반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우디는 예멘 시아파 후티반군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겠다고 공개선언했다. 최근 사우디는 유가하락으로 국가재정에 큰 피해를 입었고, 국민에게 지급하던 보조금 또한 축소해야 할 지경이다.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참전한 예멘 내전은 아무 성과 없이 장기화되고,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 퇴치 역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이란은 지난 7월 13년만에 핵협상을 성사시키고 난 이후 서방의 지원을 받으면서 중동의 헤게모니가 이란 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우디 정부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아파 처형과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이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아파에게 본보기를 보이는 동시에, 중동의 수니파 진영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친이란 성향의 서방에도 경고를 보낸 것이다. 지난해 살만 국왕 취임 이후 사우디의 사형 집행건수는 150명을 넘어서 전년도의 2배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에 이어 바레인과 수단 등도 이란과의 국교단절을 선언했다. 시아파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라크 바그다드 시에서는 시민 수천명이 거리로 나와 시아파 종교지도자의 처형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다. 인도, 파키스탄, 바레인 등에서도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 두 진영간 패권전쟁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친이란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미국은 중동에서 입지가 약해지고 있고, 이 틈을 타 러시아와 중국이 중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중동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럴 경우, 중국, 러시아-이란, 헤즈볼라-시리아의 친러·시아파 연대와 미국, 유럽-걸프, 터키-요르단, 이스라엘의 친서방·수니파 연대구도로 갈등구도가 재점화돼 또 다른 중동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중동이 사우디와 이란을 중심으로 분열양상을 보이면서 IS 격퇴전 역시 주춤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사우디가 강공책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이란 내 보수강경파가 2월 총선과 최고지도자 선출선거에서 정면대결을 주장할 경우 중동지역 내 종파갈등은 한 층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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