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사실상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 및 혁신위원회가 무산되면서 친박계와 비박계의 계파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게 됐다. 한때 김무성-최경환-정진석 3자 회동으로 대표-최고위원 분리 선출과 계파 해체를 선언했지만, 하루만에 김무성-최경환이 회동 의미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당내 파열음만 거세지고 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정계복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도 10월쯤 창당 가능성을 시사해 제4정당 출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새누리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합리적 인사를 받겠다고 외연확대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 1달만에 내년 대권을 향한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다. 총선에서 각 당이 외연확대를 강조하면서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려고 노력해 온 바, 어느 정도 인적 쇄신은 짐작됐지만, 여권발 정계개편 가능성이 커지면서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의 논란 핵심과 전망에 대해 살펴봤다.
글 편집국
친박 패권주의가 불러온 최대갈등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친박과 비박간의 갈등이 예고됐다. 친박이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파동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무소속 출마 등 비박계에 대한 유례 없는 공천 학살이 정치 본연의 모습보다는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비쳐 총선 참패라는 국민적 심판을 받았다. 총선 참패로 인해 한동안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며 계파갈등을 자제해오던 새누리당이 다시 당권에 집착하게 되면서 지도부 공백사태를 불러왔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안정적인 의석수를 확보해야 박근혜 정부가 국정운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면서 힘을 실어줄 것을 강조했다. 여기까지는 19대 식물국회를 경험한 집권여당으로서는 당연한 주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부사정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박계가 최고위원회를 장악하긴 했지만, 당권과 의원총회를 비박계가 장악하고 있어 친박과 비박간의 위험한 동거가 공천학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공천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제1당 자리까지 야당에 내주게 됐지만, 새누리당의 지형은 20대 총선 당선자 122명 중 70여명으로 친박계가 장악하게 됐다. 하지만 선거패배로 인해 친박계가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서 원내대표를 마지못해 양보했지만, 비대위와 혁신위가 비박계 위주로 구성된 데 이어 김용태 혁신위원장의 혁신안이 당내 알려지면서 차기 당 주도권까지 위협받게 되자 비박계와의 전면전을 불사할 정도로 당 주도권 싸움에 뛰어들게 됐던 것.
그렇다면 총선참패에 이어 당내 분란이 일어나면 여론의 따가운 뭇매를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박계가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 인선을 무산시킨 데 이어 당의 의결기구인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까지 무산시킬 정도로 강경하게 돌아선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여소야대 국면에서 제2당으로 몰락하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는 강력한 당권이 필요하고, 친박계가 차기 당권을 가져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친박계 의원들은 비박계 의원들이 분당한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다고 말할 정도다. 친박계 의원들은 ‘같은 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같은 당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박계 50여명이 당을 떠난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친박계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은 15일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박계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다음 날 ‘임을 향한 행진곡’ 제창 요청과 유승민 의원 등의 복당 필요성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하려고 하자 이를 계기로 친박계가 상임전국위원회를 보이콧하게 된 것이다. 즉, 당내 주도권 경쟁에서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통제 가능한 여당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친박계 입장에서는 19대처럼 비박계와 소모적인 논쟁을 종식하고 당을 일사불란한 조직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강경한 태도의 배경에는 비박계가 여권이라는 프리미엄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즉, 비박계가 하나의 세력으로 뭉쳐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 잠룡들이 대부분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거나 상처뿐인 승리를 거둬 사실상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탈당해 야당에 합류하거나 합당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총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한다는 것이 정치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친박이 원하는 대로 끌려오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무성 전 대표와 진영 의원,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경우처럼 원래 친박을 자처하던 이들도 반기를 들거나 친박의 논리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내쳐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셈이다. 친박계의 약점인 차기 대권은 대선 유력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보육과 복지를 쟁점화할 수 있는 오세훈 전 시장 등 유력한 대권주자를 영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한 가운데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은 방한 첫날인 지난달 25일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사무총장 퇴임 후 대선출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문재인과 안철수 등으로 대표되는 야권의 대권후보가 단일후보로 통일되지 않는 이상 여권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큰 것 또한 비박계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금방이라도 비박계가 새누리당을 탈당해 야당에 합류하거나 합당하지는 않으리라고 전망된다. 현재 비박계는 총선 참패로 인한 계파청산과 당 개혁이라는 혁신과제를 해결하려는 명분을 가지고 있고, 이를 친박계가 흔들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 친박 패권주의로 비칠 수 있다. 즉, 아직 공식적으로 추인되지 않았지만, 의원들이 선출한 정진석 원내대표가 추진하는 비대위와 혁신위에 비박계를 선임하자, 이에 항의하는 모양새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소탐대실이라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파국만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번 갈등이 쉽게 봉합되거나 해소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당을 장악한 친박계가 전면에 나서게 되면 비박계는 2선으로 물러나게 되고, 결국 야당의원보다 못한 여당 비주류가 되기 때문이다. 야당에서는 이런 여당의 내분사태를 더 흔들어 ‘새 판 짜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비박계가 반드시 야당에 합류하거나 합당하리란 법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분당의 절차를 밟게 돼 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은 놓치더라도 합리적 보수라는 기치를 표방한 40~50석의 미니정당을 만들게 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야당과 통합했다는 보수측으로부터의 비난을 피하는 동시에 친박 패권주의의 피해자로서 합리적 보수를 재건하려고 했던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새누리당의 지지층을 상당부분 흡수할 수 있고, 총선 때 새누리당을 거부했던 보수층을 끌어모을 수 있어 차기 대권에도 도전할 기반을 마련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더 흔드는 야당, 정계개편 신호탄 될 듯
손학규 전 고문이 호남 민심의 대선후보 결정유보와 새누리당이 계파갈등으로 대혼란에 빠져 있는 절묘한 상황에서 정계복귀를 기정사실화했다. 여권과 야권에서 모두 당직생활을 했던 손 전 고문이 더민주나 국민의당으로 입당하지 않으리라고 전망된다. 친노와 친박으로 대표되는 계파정치를 청산하고, 김무성 전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를 아우르는 ‘새 판 짜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분당 직전까지 간 새누리당과 야권 통합 대통령이 절실한 대선구도에서 지금의 계파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의 프레임을 제시함으로써 정치권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게 된다면 정치지형이 급변할 수도 있다. 여기에 같은 날 정의화 국회의장도 10월 중 창당 가능성을 시사해 제4정당의 출현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비박과 비노를 중심으로 한 정당이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다여다야 구조 하에서 대선 바로 직전에 합종연횡을 통해 후보가 단일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야권의 프레임이 견고한 상황에서 합리적 보수와 중도세력을 아우르는 정당으로 국민의당과 차별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재인 전 대표는 전북과 광주를 방문해 본격적인 대권행보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에서 영·호남 낙선자 회동을 비롯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한편, 강남역 ‘묻지마 살인’ 추모현장을 방문하는 등 민생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 전 대표는 당분간 전국을 돌며 민심을 듣고 강연을 하는 등의 일정을 계획중이다. 8월경에는 외국에 체류하면서 대권수업을 하는 동시에 전당대회 당권 다툼에 휘말리지 않으리라고 전해졌다. 김종인 대표는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당 정계개편 가능성을 낮다고 보고, 어떤 형태로든 당 대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내년 정권교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말하고, 인위적인 야권 단일후보는 국민적 신뢰를 잃게 할 뿐이며, 삼자구도가 반드시 여당에만 유리하지 않다고 밝혔다. 잠재적 대권주자로는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부겸 당선자 등을 언급했다. 이러한 가운데 안희정 도지사가 대선 출마를 강력히 시사하며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에 이어 충청대망론에 불을 지폈다. 호남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지만 대선후보로 지지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원조 친노계이자 호남보다 유권자가 많은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에서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만,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여부와, 야권성향이 강한 충남과는 달리 여권성향이 강하다는 충북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18일 광주지역언론사 조찬 간담회에서 “새누리당과는 정체성이 다르다.”며, 연정불가론의 입장을 밝혔다. 총선 직후 새누리당과의 연정 가능성과 잇단 발언으로 호남에서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해 더민주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도 3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탈한 지지층이 새누리당 지지층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국민의당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안 대표의 연정불가론과 새누리당 대선후보 가능성에 대한 부인 역시 바로 이런 배경과도 맞닿아있다. 대신, “합리적인 보수 성향의 인사가 온다면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모셔와야 한다.”고 내심 새누리당 내분을 통해 외연확장을 노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내분사태로 국민의당에 합류하는 의원들이 늘어나게 된다면 외연확장과 의원수 늘리기에는 성공하지만, 새 정치를 표방한 안 대표가 기존의 구태정치를 되풀이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