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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인연, KBS 조수빈 아나운서와 발행인의 인연


이달 인연의 주인공은 KBS 조수빈 아나운서입니다. 2005년 KBS 31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 2008년부터 약 4년간 방송의 꽃 KBS 9시 뉴스에서 앵커를 맡아 시대의 변화를 전달하며 시청자와 함께 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같은 직종 두 언론인은 어떤 인연을 맺어왔는지 그 이야기속으로.



조수빈 아나운서와의 만남
김원모 발행인과 조수빈 아나운서 두 사람은 서로 바쁜 관계로 빡빡한 스케줄을 조정한 끝에 여의도에서 만남이 이뤄졌다. 발행인이 먼저 도착하고 10여 분 후 조수빈 아나운서가 웃으며 나타났다. “아이고~ 제가 좀 늦었죠. 제가 먼저 왔어야 하는데”라며 발행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에 발행인은 “약속에 있어 아랫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라는 법이 어디 있나, 보고 싶은 사람이 먼저 오는 거지”라며 웃으며 편안히 해주었다.


식사를 하며 두 사람은 지난 시간을 더듬었다. 조수빈 아나운서는 발행인에게 “제주도 먼 데까지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잊을 수 없다”고 하자 “그때 어떻게나 눈이 많이 내렸는지 눈이 내리는 걸 보니 하늘이 신혼부부를 위해 많은 복을 준 것 같아”라며 답변했고, 기자는 두 사람에게 번갈아 가며 질문을 시작했다.



조수빈 아나운서를 방송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습니다. 발행인과는 언제 어떻게 만나셨나요?


대학생 시절이 떠오르네요. 현 MBC 아나운서인 류수민 언니가 본인이 대한뉴스에서 발행인에게 배우며 아나운서 준비를 하고 있고, 인턴기자도 하고 있다며, 함께 인턴 기자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에 대한뉴스에 가게 됐고, 그때 발행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럼 발행인께서 조수빈 아나운서를 처음 봤을 때 어땠나요?


2002년 미스월드유니버시티 한국대회에서 3위를 수상하고 세계대회를 준비하고 있더군요. 미스월드유니버시티 대회는 1986년 UN에 의해 결의된 세계 평화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며, 지·덕·체를 겸비한 세계대학생평화봉사사절단을 선발하는 대회입니다. 미스유니버스, 미스인터내셔널, 미스월드와 같이 세계 4대 규모의 국제대회로 알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대회군요. 조수빈 아나운서는 2003년 미스월드유니버시티 세계대회 때 베스트의상상을 수상했는데 대한뉴스와 얽힌 추억이 있다면.


네! 지면을 빌어 늦었지만, 세계대회 당시 신세를 많이져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 발행인을 통해 소개받은 미즈미용타운의 신현숙 원장님입니다. 큰 대회를 앞두고 강남에서 준비하려 했고, 유명한 곳에서 협찬해주겠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발행인을 믿기에 신 원장님을 만나러 2시간 넘게 걸려 이천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생소하기도 하고, 엄마도 저도 힘들게 찾아갔지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네요. 그러나 신 원장님은 저에게 최고의 드레스와 화장을 선물해주셨어요.


당시 친구들이 지금도 다 기억할 정도로 비즈도 새롭게 얼마나 많이 달았던지, 그때 사진을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화려해보입니다. 돈으로 계산해서 받을라치면 얼마를 받아도 모자랄 정도로 최고의 한복드레스였습니다. 아무 인연도 없었던 생면부지 저를 위해 딸처럼 동생처럼 그리고 돈보다 더 소중한 정으로 보살펴주셨죠. 엄청 잘해주셨다는 걸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발행인과 미즈미용타운의 신현숙 회장님께 큰 신세를 지었고, 이 기회를 통해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세계대회도 잘 치르고 한편, 대한뉴스 기자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22세~23세 참으로 어린 나이 아닙니까. 그런데 대한뉴스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사회 첫 경험이 많았습니다. 첫 인터뷰는 2003년 7월 한국의 그레이스 켈리라 불리는 영화배우 태현실 씨였습니다. 제 나이에 비해서 대단한 사회 저명인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동아일보 시절, 또 KBS 아나운서 시절을 지내며 이 경험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느꼈지요. 동아일보 인턴기자 때는 경찰서에서 먹고 자고 했으며, 법조부 팀장이 대학생인데 기사를 참 잘 썼다고 칭찬해줘서 얼마나 우쭐했던지요. 타고난 순발력은 조금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게 다 대한뉴스에서 긴 호흡으로 기사를 작성해본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조수빈 아나운서에게 이런저런 경험의 토대를 마련해준 발행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인연을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분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다시는 저 사람 보고 싶지 않아 하면서 만나지 않는 사람 한두 명 있지 않습니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 같으면 그런 사람 다시는 만나기 싫을 것 같은데, 발행인에게 “그런 사람을 왜 자꾸 만나느냐 ”물은 적도 있습니다. 발행인은 “살다보면 우리 몸도 아픈 곳이 있는데 아픈 데마다 도려내면 뭐가 남겠느냐, 나도 부족하지만 상대모습을 보며 저러면 안되겠구나 하며 배우기도 한다”며, “시간이 가면 좋아지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역시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점이 남다르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대한뉴스 기자 시절, 배우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돈을 내고서 배워야 마땅했습니다. 발행인은 오히려 인턴기자들에게 돈까지 주며 좋은 가르침을 준 점 등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고맙습니다. 앞으로 대한뉴스가 더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그렇다면 발행인께서는 조수빈 아나운서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시나요?


지성과 미모, 명석한 두뇌를 가진 21C 인재라고 봅니다. 어느 날, 현 MBC 류수민 아나운서가 서울대 재학중이고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후배를 데려왔는데 바로 조수빈 아나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3사 방송국, 5대 일간지, 작가 등 많은 기자후보생들이 대한뉴스에 인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주 남달랐지요. 정이 있으면서 냉철하고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는 인재였어요. 그리고 많은 수습기자들 중에 아나운서를 할 사람, 기자를 할 사람, 방송 작가를 할 사람 등이 어느 정도 구분되는데 본인이 아나운서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처음 왔을 때는 미스월드유니버시티 한국대회에서 지덕체에 뽑혀 세계대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쓰게 되었지요. 대회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현장기자로서 경험을 쌓게 했어요. 인터뷰 사진을 찍을 때 취재원과 눈을 맞추며 포즈를 잘 취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글이 좋았어요. 다른 수습기자들도 글을 잘 썼지만, 때로는 모방도 있었는데, 조 아나운서의 글은 상대의 말을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세밀함이 있었고, 시사는 날카로우면서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웠지요. 그리고 동료들과의 유대관계도 아주 원만해 다른 상사들도 칭찬을 많이 했어요.


여러 경험들을 많이 쌓아야 하기에 동아일보로 가게 해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한 줄의 진실을 찾는 언론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조 아나운서가 제게 취재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는 제 나름대로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와 지금 동아일보 시회부 경찰 출입기자로 있는데 계속 있어야 할 지 아나운서 시험을 봐야 할지 묻더군요. 저는 동아일보 기자도 좋지만, 그래도 첫 목표로 세웠던 아나운서 시험을 보는게 좋겠다고 했지요. 몇백대 일의 경쟁률 속에 합격소식을 듣고 기뻤고, 많은 수습기자들을 가르치다보면 모두 원하는 길을 가기가 쉽지 않은데 보람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뉴스에서 힘들게 교육을 시켜 왜 다른 언론사나 방송국으로 보내셨는지요?


네. 예전에는 대한뉴스가 정부의 이모저모를 알리는 대표적인 언론사였지만, 3사 방송국의 규모가 커지고 정부에서 49년만에 종영이 되고 1995년 월간 시사 대한뉴스 민영으로 다시 재탄생 되었죠. 3사 방송국이나 일간지가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그물을 친다면 우리 대한뉴스는 계곡에서 작은 소쿠리로 가재잡는 곳이라고 비하면 될까요? 그러나 정직하고 정이 많은 언론사입니다. 물론 가르쳐서 다른 곳으로 보내기란 회사로서도 어려움이 있지요. 하지만 조 아나운서 같은 인재들이, 또 무엇보다도 대한뉴스와 인연이 되었던 사람들이 곳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꿈을 펼쳐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뿌듯합니다. 아기새가 둥지에서만 파닥거리는 것보다는 높은 곳에서 멀리보고 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돈을 쫓는 언론사보다는 가난하지만 후배양성의 꿈을 키우는 언론사가 되길 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수빈 아나운서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요즘 진행하는 프로인 경제타임에서 볼 때마다 뛰어난 순발력에 제가 많이 배우기도 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나운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잠깐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젊은 남자 인턴의사가 대학생 시절 지적인 조수빈 아나운서를 보고 이상형으로 삼았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몰랐는데 젊은 사람들이 조 아나운서를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 여겨져서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인터뷰 후기


현재 우리사회는 잘못된 인연으로 낭패를 보는 사람이 많다. 기자는 취재를 하면서 인연이라는 것은 중요하다고 느끼며 발행인과 조수빈 아나운서는 참 귀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행인이 “사회스승을 만들어줘야 할텐데”라고 말하자 조 아나운서는 “사회 큰 스승은 발행인 한분이면 족하고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여의도로 이사를 오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을텐데…….” 라는 두 사람의 덕담이 아름다운 소리로 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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