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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준 아트위원장에게 듣는다

“작가의 감정과 예술세계 깊숙이 알아야 제대로 된 감정나와”

최근까지도 우리 미술계는 천경자의 미인도진품여부나 조영남의 대작관행 등으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미술시장의 침체를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유명 명화는 오히려 가치를 더욱 인정받으며 옥션을 뜨겁게 하고, 숨겨졌던 박수근의 미공개 작품이 미국 경매를 앞두고 국내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작고 화가는 물론 현존 화가들도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으며, 현대작가들의 작품도 유럽에서 관심을 끌며 한국 그림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으로 미술계가 위작 논란에 휩싸이자 그림감정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이에 홍성준 아트위원장을 만나, 그림 감정의 중요한 요소들을 알아본다.

그림감정의 산증인인 홍성준 전문가는 요즘 바쁘다. 여기저기서 자신들이 소장한 그림에 대해 자문을 구하거나 감정을 부탁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기 때문이다.


 

-그림 감정을 하게 된 배경이나 동기는 무엇입니까?

저의 할머니와 아버지는 8.15 해방 이전부터 중국 상해, 일본 도쿄, 유럽 등을 오가며 명화들을 많이 모으셔서, 그림 속에 늘 살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명화와 도자기 등을 꽤 소장하고 있으며, 이런 작품의 진위를 가리는 판단에 항상 익숙해 있어서 자연스럽게 주위의 애장가들이 감정을 필요로 하면 기꺼이 감식해주는 습관이 몸에 밴 터라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도대체 할머니와 부모는 어떤 분이셨기에 그 당시 외국 명화들을 수집할 수 있었나요?

할머니 최숙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 2회 졸업생) 3.1운동에 참가해 종로와 각국 공관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던 분입니다.

그 후 일제에 의해 학살된 피살자의 유족과 감금당한 동포를 구조하고 보살피는 항일여성단체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 초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60여 명의 회원을 가입시켜 독립운동을 했는데, 여기에 여러 예술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중에 최초의 유화가인 나혜석 화가도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친구가 된 나혜석은 그림으로, 할머니는 수예로 독립자금을 마련했지요. 때문에 자연스럽게 창고에는 그림이 많이 쌓이게 되었고요.

아버지 홍창덕은 독립자금 운반책 역할을 하며 할머니를 도왔고, 영어에 능통해 미 군정청 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일본과 상해를 오가며 지인들이 선물로 준 외국 명화를 많이 소장하게 되었지요.


 

-박수근, 이중섭과의 인연도 깊다고 들었습니다.

박수근과 이중섭은 저희 집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어느 날 아버지는 명륜동에서 화방을 운영하던 후배인 이상우에게 미군부대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자 데려온 사람이 바로 박수근입니다.

아버지 주선으로 박수근은 미군 PX에서 청소도 하고 초상화를 즉석에서 몽타주로 그리는 일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시절 제대로 된 그림재료가 없었기에 아버지가 미군부대나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구해다 무료로 주곤 했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기본이 드로잉인데, 재료가 부족하니까 종이에 연필로 그리거나 마룻장 등 나무판자에 엿기름 찌꺼기를 바르고 옻칠한 후 물감이 없으니 동대문 일대 염색집에서 구한 염색재료로 그림을 그려서 검은색 위주의 그림이 많지요.

이중섭도 마찬가지로 쌀부대에 횟가루를 발라 딱딱해지면 염색재료로 그림을 그렸지요. 이들이 어디서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그 모습을 지켜봤기에 더불어 저도 그림을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감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중요하게 봐야할 점은 무엇인가요?

아시다시피 한국 서양화가 유럽과 일본을 거쳐 이 나라에 상륙한지 100여년의 과정에 식민지시대, 남북분단 등을 겪으며 서양화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부족과 보존이 부실해 미술품 진위를 가리는 데 상당한 무리와 오해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림감정은 현미경에 CCD를 연결한 영상기기와 기타 과학기기를 동원해 제작된 그림의 재료인 종이와 캔버스, 물감 및 연대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합니다. 특히 그려진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려진 그림의 시대상과 작가의 환경까지 비교 분석하고, 최종적으로 서명의 진위를 따져야 합니다.


 


       진품으로 판정된 필적의 예 : 이 사진의 필적 외 다양한 필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럼 필적감정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그림에서 필적감정은 주요 분석요인 중 하나입니다. 필적감정을 위해서도 입체현미경, 고정밀영상투영기, 계측기 등 과학기기를 이용하여 필의 구성과 배치의 형태, 기필부분과 종필처리 등을 비교 검사합니다. 또 기재 과정상의 변천과 개인의 잠재습성 등을 검토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위조 필적은 곱고 닮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작가 스스로도 늘 일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분석과 오랜 경륜에서 오는 종합적인 감각 및 분석 능력에 의한 가설과 검증이 필요합니다.

 

-본인만의 특별한 감정 기준이 따로 있나요?

우리나라 1,2세대 서양화가들은 유럽의 명화 도판을 통해 서양미술을 터득했습니다. 때문에 외국 거장들의 작품들을 도판으로 보고 그림을 그릴 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개조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중섭은 중학생시절부터 프랑스 야수파의 거장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의 도판을 보고 답습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러한 작가의 연대기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 작가의 습작과 영향력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살펴보고, 그 그림의 구도나 필체분석, 사용한 물감분석과 채색순서, 붓질의 터치기술과 습관 등을 바탕으로 최종 사인(필적) 감식을 국가에서 공인한 제일문서감정원에 의뢰하여 사실여부를 가립니다.

   

       필적감정 방법 : 감정은 입체현미경, 고정밀영상투영기, 계측기 등 과학기기를 이용하여 필의 구성과 배자의 형태, 기필부분과 종필처리 등을 비교 검사하고, 기재 과정상의 변화상태 및 개인의 잠재습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한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전망과 오늘날 감정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미술시장이 형성된 것은 1970년대 이후로 4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화랑, 아트페어, 경매 등 여러 형태의 유통경로가 생겨났고, 수준과 저변도 확대되며 세계적 관심을 끄는 작가도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발전 이면의 그늘도 있어, 제대로 된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특히 그림감정에 있어서는 높은 안목과 양심을 가지고 올곧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홍성준 전문가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입바른 소리를 잘 한다. 그러나 감정(鑑定)에는 사소한 이해관계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론이다.

앞으로 우리 미술계에 유명화가의 작품이 생각지도 못한 인연으로 소장하고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그는 박수근이나 이중섭의 그림도 자신이 알기에는 드러나지 않은 더 많은 작품이 있다고 한다. TV진품명품에 궁금해서 들고 나온 작품이 의외의 명품이거나 호가를 받듯, 진품을 찾아내고 가려내는 감정사의 소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자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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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영 제일문서감정원 원장 본 홍성준 전문가 >

 

안목과 전문지식으로 감정기준이 뚜렷한 분입니다

 

 홍성준 전문가는 서양 미술을 보는 안목과 식견이 상당하고, 전문지식을 두루 갖춘 분입니다.

특히 이 분의 가정을 보면, 조부모님은 대한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양 부모님도 일찍이 해외 유학을 했던 분들의 후손이며, 다양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해외에 자주 왕래하면서 다양한 미술품을 수집한 결과 오늘의 홍성준 전문가에게 양화 미술 진위를 밝혀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요.

홍성준 전문가는 가품들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많은 진품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감정의 기준이 분명합니다.

 

 

김형영 원장은

김형영 원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실장으로 근무하며 우리나라 문서감정의 체계를 잡았다. 국가기능검정 인장공예1급 기능사이도 한 김형영 원장은 국가기능검정 출제 및 검정위원, 한국인각기술사회 회장, 대한문서감정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1년 천경자의 <미인도>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일 때 국과수에 의뢰한 필적감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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