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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가로 연미당 선생 선정

임시정부를 지키며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한 여성 독립운동가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연미당(延薇堂, 1908.7.15.1981.1.1.) 선생을 2018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19087월 북간도 용정해관에서 근무하던 연병환(延秉煥)과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 연병환은 북간도 청년들이 191933일 만세운동을 전개하자 배후에서 이를 지원하다 체포되어 2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립학교인 인성학교(人成學校)를 졸업한 선생은 19277월 청년 독립운동가 엄항섭과 결혼했다.

 

결혼 이후 선생은 남편 엄항섭을 내조하며, 자녀들의 교육과 나아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이와 같은 삶은 당시 독립운동가를 남편으로 둔 여성들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이었다.

 

나라를 잃은 여성들은 가장으로서의 삶과 함께 독립투사로서의 삶도 요구 받았다. 192711월 상해에서 결성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에 참여하기 시작한 선생은 상해여자청년동맹에서도 활동했다. 선생이 여기에 투신한 이유는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 독려와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서였다.

 

1932429일 윤봉길의사가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의거를 일으켰다. 일제 관헌들은 한인들 색출에 혈안이 되었고, 선생은 가족을 이끌고 상하이를 탈출했다. 하지만 이는 고단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임시정부가 중국 가흥 등지로 이동할 때, 자신도 돌보기 힘든 상황에서 노() 독립운동가들을 병간호했다. 가흥에서 폐결핵으로 고생하던 이동휘와 장사 남목청에서 피습당한 김구 간호가 대표적이다.

 

독립투사로서의 삶은 이동과정에서도 이어졌다. 1936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재건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했다.

 

1940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에 정착하자 항일과 독립을 위해 여성들을 결집하고자 한국혁명여성창립동맹을 발족하고 애국부인회를 재건했다. 특히, 선생은 중경 방송국에서 일본군 소속 한인 사병들을 광복군으로 전향시키기 위한 반일선전 활동을 전개해 갔다.

 

194663일 한국으로 환국했다. 선생이 해방이후 즉시 환국하지 못한 이유는 중국에 있는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해방 이후 엄항섭의 내조에 힘을 쏟던 선생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편이 납북되어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해와 중풍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냈던 선생은 198111일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연미당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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