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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도서

김동원 동시집 <태양 셰프>

 

김동원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 <태양 셰프>가 출간됐다. 시인은 포크로 별들을 찍어 먹는 상상을 한다. 태양에 피자를 굽고 반달 치즈로 아침을 먹는다. 목성에 앉아 메인 창을 띄워, 지구와 게임을 벌이기도 한다.


김 시인에게 우주 시·공간은 비밀을 캐내는 보물찾기 놀이터이다. 언어의 숲과 바다 속에서, 아이들의 시어로 춤추고 마음껏 노래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 그루 / 9,000원 )


다음은 <태양 셰프>에 대한 저자의 '시가 태어나는 자리'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해설이다.

      

동시는 엄마의 냄새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 아빠란 말 보다 더 좋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엄마라고 부르면, 고향 바다 냄새가 난다. 내가 타관에서 병이 들어 방바닥에 하루 종일 누웠을 때, 가장 보고 싶던 얼굴도,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였다. 두 분만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가득 고인다. 내게 엄마는 고향 바다 자궁 우주와 동일한 말이다. 동시아빠가 보고 싶은 날은이란 작품에는 그런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오롯이 담겨 있다. 어머니는 당신이 중풍으로 누워 계실 때,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아버지가 무척 그립다고 하셨다. 그 저녁 당신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을 찍어 나는 이 시 행간을 채웠다.

 

하늘로 가신 아빠가 보고 싶은 날은

나는 언제나

두 바퀴로 굴러가는 해님 자전거를 타고

뒷자리엔 아픈 엄마를 태워

바다 물 위로 괜히 달리고 싶죠

오징어가 따라오고 고래가 따라오고

하루 종일 서쪽 수평선까지 달리고 싶죠

내 등에 촉촉이 젖어오는 엄마의 눈물을

빠알간 노을에 마구 섞어

, , , 남몰래 퍼먹고 싶죠

 

김동원,아빠가 보고 싶은 날은전문

 

내 고향은 동해가 바라다 보이는 영덕군 남정면 구계항이다. 어릴 땐 그 바다는 나의 놀이터였다. 백사장 모래 벌은 200자 원고지 빈 칸이었다. 아침마다 물속에서 나오는 빨간 해는 기막힌 첫 행이었다. 고등어 오징어 가자미를 가득 실은 통통배는, 수평선 위에서 움직이는 시어에 다름 아니었다. 해가 이마를 내밀면 어머니는 아이고, 바다 속에 장작불 잘도 타는 것 보래이" 그러셨다. 동해 바다를 숫제 우리 집의 가마솥으로, 붉은 해를 아궁이의 장작불로, 방어나 물고기들을 무슨 고봉밥처럼 귀히 여기셨다. 어린 나만 보면 까까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누굴 닮아 이렇게도 잘 났노라며 좋아하셨다. 언제나 엇비슷 웃는 그 청상의 어머니는 수평선 위에 핀 모란꽃처럼 환하셨다.

 

어린 시절 나는 먼 도시에도 고향 구계항처럼 엄청 많은 물이 집집마다 앞마당 앞에 담겨 있는 줄로만 알았다. 고래가 잡히고 노래미가 뛰고 시원한 대구탕국을 마음껏 먹는 그런 동해 바다가 도시 옆구리에 하나씩 매달려 있는 줄로만 알았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혼자 대구로 전학 오고 나서야, 동해 바다는 고향 앞마당에 하나뿐임을 알았다. 그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포항 역사(驛舍)에서 처음 타 보았던 그 기차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마냥 신기하여 차가운 쇳덩어리를 만지고 또 만져보면서, 고래보다 더 큰 기차 칸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나는 텅 빈 하숙집 골방에 쪼그려 앉아 늘상 바다를 그리워했다. 비릿한 엄마 냄새가 그리웠고 4살 때 돌아가신 어부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나는 외로울 때마다 동시와 시를 썼다. 그럴 때면, 어릴 때 바다 위에 쏟아지던 그 소낙비들의 음표가 떠오르곤 한다. 어느 해 겨울, 내가 좋아했던 옆집 소녀와 함께 엄마의 손을 잡고 보았던, 수천 수 만 송이의 흰 눈은 멋진 한 편의 동시였다. 지금은 그 엄마도 하늘 나라에 계신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병상에 누워 시가 그렇게도 좋으냐?”고 물으셨던 말씀만 떠올리면, 나는 내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것 같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 비밀은 말한 적은 없지만, 내가 동시를 쓰는 진짜 이유는, 먼 후일 하늘나라에 가면 부모님 앞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가 쓴 동시를 읽어드리고 싶어서이다.

 

동시는 상상력이다 

나는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사실에만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우주의 시공간 속으로 날아다닌다. 마치 바람이 매화에 앉았다가 목련꽃에 옮겼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박새와 노는 비밀한 손장난과도 같이. 우주가 물질과 에너지로 몸을 바꿔가며 놀 듯, 나는 인간이 만든 언어로 동시를 만지며 논다. 알고 보면 시도 그런 놀이/유희의 하나이다. 하여중세의 가을을 쓴 요한 하위징아는 우리 인간을 두고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적 인간)라 하지 않았던가! 자음 14자와 모음 10자를 갖고 원고지 속에 붙였다 뜯었다 조립하는 언어 놀이는 시에서 아름다움과 흥감의 절정을 이룬다. 시와 인접예술의 만남은 더욱 새롭고 창의성을 요한다. 퍼즐과도 같이 짜맞춰 들어가는 재미란, 미완의 완성을 추구해 가는 창의력은, 자연과 사물에 대한 지적/정서적 호기심, 시선과 응시에서 비롯된다. 2017년 매일신문 동시 당선작태양 셰프우주적 발상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빚어낸 한 편의 판타지 동시”(박방희 평)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나는 우주에서 제일 어린 태양 셰프

황소별을 통째로 구워 메인 요리로 낼 거야

지구의 모든 어린 친구들 다 불러올려

달 위에서 콘서트를 열 거야

K팝 아이돌 형아들 초대해 힙합을 추게 하고

걸그룹 누나들 샛별과 댄스를 추게 할 거야

수천 대 인공위성은 녹여 피아노를 연주하게 하고

달빛 속에서 친구들과 손잡고

싸이 아저씨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출 거야

화성에겐 북극 오로라 빛을 섞은

달콤한 아이스크림 천 개쯤 만들어 오게 하고

물고기별과 고래별은 밤하늘 바닷속에 헤엄치게 할 거야

! 그 새벽 만약 내가 오줌이 마려워

꿈만 깨지 않았다면,

나는 우주에서 제일 멋진 태양 셰프

 

김동원,태양 셰프전문

 

태양 셰프의 매력은 우주 공간을 시의 무대로 상상한 시적 발상에 있다. 해와 달을 언어로 산과 바다를 동시의 질료로 보았다. 스무 살 무렵 나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작품월하독작(月下獨酌)에 푹 빠져 살았다. 이백은 미치광이처럼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내 머릿속에 펼쳐주었다. 황당무계한 비유도 좋았거니와 그의 시적 압축과 팽창은 엄청나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갖고 놀게 했다. 그때부터 나의 롤 모델은 이백이었다.태양 셰프에서 보는 것처럼, 시적 화자인 는 우주에서 제일 어린 태양 셰프이다. 이 시의 착상은 요즘 대세인 TV 프로 먹방을 보다 홀린 듯 받아썼다. 시 속의 주인공을 셰프로 설정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싸이의 말춤별나라 친구들을 한 명씩 초대했다. 황소별을 통째로 구워 메인 요리로 내고 지구의 모든 어린 친구들을 불러올려 달 위에서 콘서트를 연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이런 상상은 또 다른 상상의 꼬리를 물고 나오기 마련이다. 수천 대 인공위성은 녹여 피아노를 연주하게 하고, 물고기별과 고래별은 밤하늘 바다 속에 헤엄치게 하고, 오로라 빛의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시적 발상은, 재미 그 자체였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꿈속 모티브를 끌고 와 아이의 눈으로 현실 공간에 재구성한 것이다. 나는태양 셰프를 통해, 한국동시문학에서 놓친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발견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미래 동시를 개척하고 싶었다.

 

동시는 착상이다

좋은 시는 착상이 중요하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사물이나 풍경을, 재미나고 엉뚱하게 뒤집어볼 때 새로운 시가 된다. 늘 똑같은 질문과 생각으로는 관념의 틀 속에 갇혀 사물의 참모습을 볼 수가 없다. 때때로 저 친구의 얼굴을 이 친구의 엉덩이에 붙여보거나, 팔과 손을 여친의 머리 위에 뿔처럼 달아보거나, 나무 아래 누워서 잎들이 하늘을 향해 춤추는 모습을 보거나, 한밤 중 연못 속에 들어앉은 달님은 왜 물에 젖지 않을까, 이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할 때, 비로소 시가 태어난다. 평범한 소재로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지 못한다. 우선, 동시꿈꿔봐의 기발한 시적 착상은, ‘그랜드 피아노 백대아파트 맨 꼭대기 구름 위에올려놓은 점이다.


까치 녀석과 힘을 합쳐

아파트 맨 꼭대기 구름 위에

그랜드 피아노 백대를 올려놓을 게

 

마음껏 쳐봐

 

학원 가기 싫을 때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엄마 잔소리 꽥 꽥 꽥 오리 같을 때

 

풀쩍,

구름 위로 뛰어올라 봐

 

하얀 건반 까만 건만

멋대로 두들겨 봐

 

하늘 속 푸른 바다

고래가 보일 때까지

 

지그락 자그락

찌그락 짜그락

별을 밟고 춤춰 봐

 

게임에 져 화날 때

친구에게 왕따 당할 때

이 세상 나 혼자란 생각 들 때

 

풀쩍,

구름 위로 뛰어올라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컵 라면 파는 그 은하수까지

신나게 달려 봐!

 

김동원,꿈꿔 봐전문

 

위의 시꿈꿔 봐가 태어난 자리는,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를 통해 유입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개최한, 콘서트를 보고 난 직후였다. 낙동강 야경을 배경으로 100명의 피아니스트들이 100대의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 아름다운 밤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나는 불현듯 그 곳에서 솟구치는 예술의 자유를 느꼈다.

하여, 종일 공부에 치여 사는 도시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기쁨과 자유로운 해방감을 선물하고 싶었다. “학원 가기 싫을 때 /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 엄마 잔소리 꽥 꽥 꽥 오리 같을 때마음껏 백대의 피아노를 치게 하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상상력이 뻗쳤다. “지그락 자그락 / 찌그락 짜그락별을 밟고 춤을 추면서, 하얀 건반 까만 건반 제멋대로 두들기며 놀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했다. 물론. 내가 어릴 때 보았던 동해 바다 물속에 헤엄치며 놀던 고래의 자유 이미지를 불러와, 우주의 은하수까지 그 시적 외연을 확장해 보았다. 동시꿈꿔 봐,태양 셰프,바람 의자,12살 나비가 살아요,우주 게임등과 함께 권효정 작곡가에 의해 경주문화예술의 전당무대에 멋진 동요로 만들어져 발표되었다.

 

동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

좋은 시를 쓰려면 자신이 표현할 사물에 대해 오랫동안 자세히 쳐다보아야 한다. 살구꽃 귀에 대고 말을 걸거나, 그 꽃의 말을 받아 적거나,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면, 그 새가 수컷이란 것을 알아챌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시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하나 지어, 상상력이란 의자 위에 앉혀 보라. 시의 내용이 풍성해지고 참신한 모습이 배경이미지로 등장하게 된다. 어린 날 첫사랑 이야기는 멋진 소재이다. 누구에게나 작은 심장을 뛰게 한 이 사랑 얘기를 시의 의자에 앉히면, 단박에 시어의 색깔들이 분홍으로 변한다.

 

우선,바람 의자를 소리 내어 읊조리면서 감상해 보자.

 

내가 갖고 싶은 의자는

바람 의자죠

 

장미꽃 모양으로 접어도

수선화 꽃대로 접어도

 

언제 어느 곳에나 들고 다니며

쫘악 펼 수 있는

바람 의자죠

 

내가 갖고 싶은 의자는

친구들 눈에는 절대 띄지 않는

 

나 혼자만 몰래

꺼내 볼 수 있는

바람 의자죠

 

연둣빛 치마가

꽃잎보다 더 예쁜

옆 반 소영이 곁에 앉아보려면

 

그 애 눈엔

죽어도 들키지 않는

바람 의자죠

김동원,바람 의자전문

 

바람 의자를 쓸 무렵, 엘리베이트 문 사이에 낀 사고로 나의 몸은 여전히 아팠다. 두 번의 수술을 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하루 한 번씩 수성 못 둘레를 산책했다. ()은 사람을 고달프게 하지만, 사물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매우 주의 깊게 바라보게 하는 요술쟁이다. 어찌 보면 병은 하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행운의 선물인지 모른다. 이따금 벤치 위에 앉아 붉게 물드는 앞산 노을을 구경하고 있으면, 바람은 내 귀속으로 파고들어와, ‘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 라고 소곤거렸다. 그때 마다바람 의자속의 주인공 소녀가, 내 기억의 서랍을 밀고 나오곤 했다.

 

한 번도 나는 그 애에게 사랑 한다는 말을 고백하지 못했다. 내 나이 그때 12, 그 소녀의 두 눈 속에 퐁당 빠져 살았다. 소녀의 손은 작고 오목하고, 발자국 소리는 여우비처럼 내 귀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애만 보만 나는 괜히 가슴이 쿵쿵 뛰고, 귓불이 확확 거리고, 생긋생긋 잘 웃는 얼굴만 생각나고,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첫사랑은 번개처럼 와 벚꽃처럼 사라진다.’는 말이 맞았다. 나는 사랑하면 밥맛이 없다는 것을 그때 벌써 알았다. 눈만 감으면 더 또렷하게, 뽀얀 피부의 그 소녀가 웃고 있었다. 노랑 수선화 꽃모양 보조개가 두 개 섬처럼 떠 있었다. 소녀는 변덕쟁이였다. 금세 좋았다 금방 토라지는 분홍 꽃빛 같았다. 엄마보다 더 예쁜 여우가 세상에 산다는 사실을, 나는 12살에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때바람 의자만 가졌더라도, 소년의 가슴 속엔, 평생 폭설이 내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동시는 산소다

나는 동시를 어른들의 산소라고 부른다. 동심의 나무야말로 날마다 어른들의 세계에 맑은 공기를 만들어 보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1990년부터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비판의 글과 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생태적 상상력은 시적 창조력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 결과 최근 동시에서도 환경 생태시들이 낯설지 않게 눈에 띈다.초록 수프는 날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에 비유한 시다.

 

아빠는 자꾸 숲을 수프라고 불러요

엄마는 수프가 아니라 숲이라고 고쳐주지만,

아침마다 아빠가 갖고 온 숲 속 초록 수프에

식구들은 딱따구리 소리를 넣어 먹어요

뻐꾸기 소리도 뻐꾹뻐꾹 넣어 먹어요

디저트론 바람 속에 몰래 숨어온

아카시아꽃향기를 떠먹어요.

아빠는 자꾸자꾸 숲을 수프라고 불러요

 

김동원,초록 수프전문

 

봄비가 내리는 안개 낀 무학산(舞鶴山, 203m) 숲속은 정령 같다. 산책로 사이로 철쭉꽃이 피어 만발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환하게 웃는다. 아침 일찍 맡는 찔레꽃 향기는 환상이다. 나는 이따금 햇볕이 좋은 한낮엔 참나무 둥치에 기대 뻐꾸기 소리를 흉내 내곤 한다. 뻐꾸기 소리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가장 좋아하던 숲의 악기이다. 그래서인지 그 소리를 듣노라면, 엄마의 혼령이 숲을 흔드는 것을 느낀다. 귀 바퀴를 타고 감겨오는 청각이 아니라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들여오는 소리다. ~꾹 뻐~, 뻐꾹 뻐꾹 뻐~. 그것은 어쩌면 시의 혈관에 흐르는 흐느낌 같기도 하고, 한없이 일렁대는 몸 없는 것들의 살 부비는 소리 같기도 하다. 숲은 흔들리는 사물의 몸짓이 쓰는 언어다. 안개비 내리는 새벽 덤불 딸기 새로 나를 쳐다보던 고라니의 눈빛도 좋았다.

 

내게 있어 숲은 신이 지핀 영감의 장소이다. 나는 날마다 숲속을 돌아다니며 초록 시()를 떠먹는다. 아니 아카시아 꽃향기를 팍팍 퍼먹는다.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소나무를 꼭 껴안고 그 둥치에 귀를 대보곤 한다. 될수록 나는 세상 밖의 잡사는 밀쳐두고, 그 허공 속에 손가락을 넣고 노는 청단풍 어린가지들과 수화(手話)를 한다. 숲은 그 자체가 음악이다. 아니, 숲 그 자체가 커다란 하나의 악기 울림통이다. 산이 지휘자라면 나무들은 온갖 소리들의 연주자이다. 나무가 만든 초록 밥을 내가 떠먹고, 내가 내쉰 숨을 나무가 되먹는 이치가 놀랍다. 틈만 나면 나는 느리게 휘파람을 불며 이 숲길을 보고 만지며, 나만의 시상(詩想)을 가다듬는다. 딱따구리가 참나무를 쪼으며 내는 그 아름다운 공명의 메아리는 동시의 보고(寶庫)이다.초록 수프도 이 산책길에서 받아 적었다. 혹시 이 인간이 떠먹는 산소 수프가 아닐까하는, 엉뚱한 상상이 번쩍 스쳤다. 시가 되려고 했는지, ‘을 깊게 발음하니 수프가 되었다. 숲은 생명의 은유이자 자연 언어의 살아있는 터전이다. 내게 무학산은 동네 뒷산이 아니라 시가 태어나는 자리다.

 

동시는 숨바꼭질 놀이다

우주는 자꾸 비밀을 숨기려고 하고, 사람들은 그 비밀을 캐내려고 한다. 아무리 겨울 흰 눈이 봄을 숨기려 해도, 봄은 꽃을 피워 들켜버린다. 어제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오늘은 죽어 감쪽같이 지구에서 살아져 버린다. 생각컨대 우주 만물은 아이들의 숨바꼭질 놀이와 같다. 스스로 드러나고 감추는 것이 자연의 비밀과 닮았다. 하여, 모든 사물의 근본은 하나지만 저마다 생긴 모양이 다르듯,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 다시 생겨나는 그 이치야말로, 우주의 놀라운 숨바꼭질 놀이가 아닐까.

 

포크로 우주 별들을 찍어 먹으면 달콤하겠지

태양엔 피자를 굽고 반달 치즈를 한 입 물고

친구들과 목성에 앉아 지구와 게임을 할 거야

별똥별 공중에다 불 밝히고

때가 낀 도시는 로봇 청소기로 지우고

바다도 다시 만들고 산맥도 다시 만들고

구불구불한 어른들 생각은 곱게 펴서 꽃길로 낼 거야

남극 북극 가선 얼음 뭉치 몇 개 들고 와

착한 나라 못살게 구는 대포 구멍을 막아 버릴 거야

일곱 가지 색지로 오대양 육대주를 잇는

희망 같은 무지개다리도 놓을 거야

아프리카 나무에겐 하얀 마음을 칠하고,

아메리카 나무에도 하얀 마음을 칠하고,

아시아 나무에도 하얀 마음을 칠하고,

냄새나는 샛강들은 모두 걷어 내

히말라야 흰 눈으로 씻어서

맑은 물 소리로 흐르게 할 거야

이렇게 밤새워 게임을 하다 지겨우면

밤하늘 위에 책가방을 던져 우주선 만들어

그 신나는 은하수 강가까지 멋진 우주 비행도 할 거야

이따금 지구가 보고 싶을 거야

그러면 아마존 밀림 속으로 손을 뻗어 바나나를 따먹고는

고래가 춤추는 태평양 여름 바다를 향해

야호, 야호, 야호, 신나게 다이빙을 할 거야

 

김동원,우주 게임전문

 

나는 이따금 12살 소년으로 돌아가, 포크로 별들을 찍어 먹는 상상을 한다. 태양에 피자를 굽고 반달 치즈로 아침을 먹는다. 날마다 목성에 앉아 메인 창을 띄워, 지구와 게임을 벌리기도 한다. 물론 나에게 우주 시공간은 비밀을 캐내는 보물찾기 놀이터다. 시의 나라에선 이 놀이를 은유라고 부른다. 은유야말로 동심의 천국으로 가는 환상 열차이다. 동시우주 게임, 지구의 못난 어른들 생각에 똥침을 놓는, 아이들의 배꼽 잡이 게임이기도 하다. 착한 나라를 못살게 구는 나쁜 나라를 벌()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남극 북극에서 가져온 얼음 뭉치로 대포 구멍을 막아버리는 우스꽝스런 웃음도 섞였다. 착한 아이들은 오대양 육대주를 잇는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 있는 하얀 마음의 선물도 있다. 지구촌의 오염된 더러운 하천은, 히말라야 흰 눈으로 맑게 씻어서 흐르게 했다. 물론 이 모든 놀이의 대장은, 언어이다. 하여, 나는 이렇게 밤새워 게임을 하다 지겨우면 / 밤하늘 위에 책가방을 던져 우주선 만들어 / 그 신나는 은하수 강가까지 멋진 우주 비행도해본다. 그러다 지구가 보고 싶으면, “아마존 밀림 속으로 손을 뻗어 바나나를 따먹고는 / 고래가 춤추는 태평양 여름 바다를 향해 / 야호, 야호, 야호, 신나게 다이빙을 할것이다. 이후로도 나는 언어의 숲과 바다, 밀림 속으로 들어가 동적(動的, 童的)인 언어의 춤과 노래를 마음껏 향유할 것이다 



김동원 시인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문학세계시 부문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에세이집 ,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 회원. 텃밭시인학교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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