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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지양복점 박장일 대표

패션의 산실 명동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명장

매일경제 1970316일자 신문에 현대인의 멋 현대양복점, 충무로의 왕좌 맨체스타, 소공동의 명문 해창양복점, 명동의 정통 이성우양복점 등 서울의 유명한 양복점 종합 기사가 실렸다. 도심에 즐비했던 맞춤양복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1세기 양복 네비게이션에게 물었다. 남자의 멋과 품격을 높이고 결혼 등 특별한 날에 격식을 갖추어 입으려면 어디로 가지? 라고 물으니, 패션의 뿌리 명동에 있는 벤지양복점으로 길을 안내한다. 박장일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맞춤양복의 가치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귀한 옷

우리나라 양복의 역사는 구한말 외국을 방문했던 개화파 인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어 12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조선인들이 일본인과 중국인이 경영하는 양복점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양복을 만들기 시작한 지도 100년이 넘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재단사는 한국은 양복점의 천국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때는 양복 상품권과 양복지가 고급 선물이었다

 

박장일 대표는 55년 이상 기술과 성의로 일관되게 맞춤양복 외길을 걸어왔다. 또한 맞춤양복의 산실 명동에서 30년 이상 그 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벤지양복점의 양복 상품권은 여전히 고급 선물로 인기가 높다. 가게에 진열된 분위기 있는 양복 하나하나가 벤지의 명성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옷감은 계절별로 잘 정돈된 모습으로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재단종이 위에 올려진 묵직한 가위와 각자, 곡자, 줄자 등 재단 도구들이 새 옷 만들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맞춤양복 가치는 무엇일까. “주문자 한 사람을 위해 재단, 가봉, 재봉 등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기 때문에 상의 하나를 바느질하는데 12시간 이상, 바지는 5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상체가 앞쪽으로 굽은 굴신체형, 새가슴, 팔과 다리의 길이 차이, 뚱뚱하고 말랐는지 등 체형의 결점을 보정합니다. 좋은 기성복도 많지만 맞춤양복만의 가치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귀한 옷이라는 겁니다라며 오랜 시간이 흘러도 몸에 착 달라붙어 벗고 싶지 않은 옷이 좋은 옷이라고 조언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박장일 대표.

 

멋을 아는 남성들 벤지양복을 찾다

벤지양복만의 차별화 된 특징은 무엇일까. 이곳의 양복은 고가의 양복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성 양복을 구매하는 수준의 가격대 양복지도 갖추고 있다. 옷을 입은 맵시가 상의는 몸에 착 달라붙고, 바지는 엉덩이 살이 없어서 헐렁할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까지 고려하는 등 패턴만 보아도 멀리서 한눈에 벤지양복임을 알 수 있다. 올 한 해 트랜드 변화는 어떨까? “·장년층도 전통적인 정장 느낌을 살리면서 상의는 허리선을 강조하고, 어깨는 좁게, 폭은 몸에 꼭 맞게 타이트한 스타일을 강조합니다. 바지는 젊은 층은 앞 주름 없이 슬림핏으로, 기장은 앞 기장이 구두등에 많이 접히지 않을 정도로 짧게 입습니다. 장년층은 편하게 입으려면 앞에 주름 하나를 넣어서 여유를 주고, 기장 역시 짧아지는 추세입니다단색도 즐기지만 줄무늬와 체크가 대세입니다라고 말했다.

 

고객들 사이에 벤지양복 입어 봤어?’라는 말이 곧 남성의 멋을 좌우하는 기준이 될 정도라고 한다. 주 고객은 정·재계, 문화인, 유명연예인 및 고품격 예복을 갖추고 싶거나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하는 젊은 층 등 다양하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속설도 있다. 무명 연예인이 이곳의 양복을 입으면 언젠가 스타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 및 국민 사회자 송해를 비롯해 김성환, 이덕화, 임채무, 남보원, 박근형, 임동진, 길용우, 하동진, 최석준, 박진석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인이 많다. 모두 베스트드레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유행도 변하고 입는 사람의 체형도 변하는 법. 박장일 대표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골 고객을 반갑게 맞이하며 말을 건넸다. “잘 지내셨습니까! 건강해 보입니다. 여전히 멋지시군요. 군청색 정장에 군청색 셔츠는 자칫 잘못하면 촌스러울 수 있는데 아주 잘 어울리고, 나비넥타이가 고상합니다. 그런데 바지가 엉덩이 부분이 좀 넓어서 줄여야겠고, 카브라 밑단은 유행이 지났으니 수선을 해 드릴 게요라며 상대의 취향을 잘 아는 가족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그때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또 다른 중년 남성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벤지양복이 얼마나 따듯하던지 올겨울은 코트를 입지 않았어요라며 옷 자랑을 했다. 살펴보니 안에 기모가 들어간 양복지였다. 두 고객은 서로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곳의 고객들은 10~30년 이상 된 인연이 많다.

 

 

벤지양복점은 만남의 장 역할 사랑방

그냥 단순한 맞춤양복점이 아니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다. 때로는 나랏일을 걱정하고, 때로는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 등 서로가 소중한 인격과 믿음을 나누는 대화방이다. 벤지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인연을 맺는 대화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박장일 대표가 생각하는 고객 철학은 무엇일까? “옷 맞추는 사람, 가봉하는 사람, 찾아가는 사람 등 고객들이 들락날락하므로 스스로 깨끗하게 차려입고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직접 입어보며 패션의 흐름과 유행을 리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각각의 스타일 연출도 조언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냥 옷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이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벤지양복점은 맞춤양복이 사라질 거라는 우려와 달리 왜 사라지지 않을지 엿볼 수 있었다. 옷도 마음도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대하는 원칙은 세대를 달리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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