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말 재미교포 사업가가 한국에 기증한 구한말 고종(재위 1863∼1907)의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 뒷면에는 영문 이름 ‘W B. Tom’이 있다. 어른 주먹보다 더 큰 은색 거북이 몸체의 손잡이용 꼬리 아래에서 발견됐다. 기증자에 따르면 경매 사이트 구매 당시부터 음각돼 있었다고 한다. 한일합방과 6‧25 전쟁을 거치는 새 해외에 밀반출된 후 소장했던 외국인이 이름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구한말 ‘외교 자주’를 꿈꾸며 대군주(大君主)를 자처하고 ‘천자’를 뜻하는 보(寶)를 처음 넣었던 고종의 국새가 대한민국에 돌아왔다.
‘국새 대군주보’는 1882년 고종이 외국과의 주요 조약 날인에 쓰기 위해 새로 제작했던 국새 6과 중 유일하게 전해지는 실물이다. 이와 함께 1946년 일본에서 환수한 대한제국 ‘국새 제고지보’, ‘국새 칙명지보’, ‘국새 대원수보’ 등 총 4과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된다. 모두 해외로 반출됐다 돌아온 환수문화재로서 보물로서의 역사적 상징성과 조형성이 인정된다고 문화재청이 28일 밝혔다. 앞서 대한제국기 국새였던 황제지보와 조선왕실 국새였던 유서지보‧준명지보 등 총 3과가 2017년 보물로 지정된 데 이어서다.
국새 대군주보’가 만들어진 19세기 말 조선왕실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느라 고심 중이었다. 당시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 체결을 앞두고 고종은 국가의 상징물인 국기(國旗)와 국새를 함께 만들도록 명했고 무위영(武衛營, 고종대 궁궐 수비를 맡은 관청)에서 호조의 예산을 지원 받아 완성했다. 그전까지 명과 청으로부터 각각 받은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을 국새로 썼던 조선이 자주독립국을 지향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후 1897년 10월 11일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국새도 ‘대한국새’를 새로 사용하게 되면서 구한말 국새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대군주보를 제외한 나머지 5과의 행방은 알려진 바 없다.
문화재청은 대군주보가 “갑오개혁을 전후한 국제정세의 변화와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방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유물”이라며 “서체, 형태 재질, 주물방식 등 대한제국 이전 고종 대 국새제작 방식이 담겨진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알려진 유물이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함께 지정 예고된 ‘국새 제고지보’ ‘국새 칙명지보’ ‘국새 대원수보’는 모두 대한제국기(1897~1910)에 제작된 것이다. 이들은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진 6개월 후인 1911년 3월 조선 총독부에 인계됐다. 당시 천황의 진상품으로 바쳐져 일본 궁내청으로 들어갔던 국새들은 8.15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15일 미군정을 거쳐 모두 총무처(1940~1960년대 국무총리 소속 아래 설치되었던 중앙행정기관)에 인계됐다. 당시 미군정으로부터 환수 받은 국새는 총 6과였는데 1949년 총무처 주관으로 특별전에서 공개된 후 6‧25 전쟁 사이에 모두 유실됐다. 그러다 1954년 경남도청 금고에서 ‘제고지보’ ‘대원수보’ ‘칙명지보’ 3과가 극적으로 발견돼 그 해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