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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선묵혜자 큰스님이 걸어온 길 종교문화의 표상되다

영상순례는 4차 종교시대 신앙의 새로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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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는 로봇과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4차 산업시대다. 종교의 방향도 4차 종교시대다. 2021104BBS 불교방송을 통해 선묵혜자스님과 함께하는 영상순례가 신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글로벌 뉴스거리다. 패러다임이란 그 시대 사람들의 행동 기준이 되는 사고방식이다.

 

법랍 55년 선묵혜자 큰스님은 어떤 길을 걸어 왔을까. 매 순간 정진하고 세상의 변화보다 한 발 앞서 한국 불교의 미래를 개척하는 삶을 멈추지 않았다. 그 길고 긴 여정을 따라가면 행보와 업적에 대해 일반인은 생각도 못했던 것을 하는구나 하고 찬탄하게 된다. 길 위 한 사람의 발자국은 사라져도 한 성직자의 발자취는 영원히 역사에 기록된다.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발자취를 지면을 통해 회고록 형태로 구성했다. 본문은 연대기에 얽매이지 않고 주제별로 나눴다. 1부 종교문화의 표상 영상순례, 2부 불가사의한 인연 불지사리와 평화의 불, 3부 신행문화의 표상 108산사순례기도회, 4부 다종교 집안에서 탄생된 불가의 인연.

 

1, 종교문화의 표상 영상순례

 

BBS 불교방송 TV와 유튜버로 전하는 미디어 포교

선묵혜자 스님과 함께하는 영상순례이슈

 

2021104BBS TV를 통해 선묵혜자 스님과 함께하는 영상순례첫 발대식이 방영됐다. 탄생 계기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불자들의 답답함을 영상으로 풀어보고자 시작됐다. 내용은 20069월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에서 시작된 ‘108산사순례기도회’ 9년간의 여정을 담은 순례영상이다. 거기에 선묵혜자 스님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영상에 각 사찰의 역사와 설화를 보충 설명하여 기도와 함께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이다. 매주 월요일 16:30, 목요일 15:00, 일요일 10:00 동시간대에 방송된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고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튜버로도 시청이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유튜버를 통해 알게 됐다며 도안사를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스님은 영상순례 발원문에서 “14세에 동진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의 은혜만 입고 중생제도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불자들이 자기 가슴 속 아픔을 속으로 속으로만 삭히며 답답할 것입니다. 영상순례를 통해 전국 불교 성지를 직접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고 밝혔다.

 

한편, BBS 불교방송 프로그램 <나를 찾는 백팔기도문>은 방송국 관계자가 스님에게 제안하여 편성됐다. 기도문은 한구절 한구절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를 요약한 것으로 108산사순례·53기도도량순례·108군법당순례시 회원 만여명이 무려 15년간 함께 했다. BBS 라디오는 새벽 430, BBS TV는 오전 6시에 방영되고 있다. 그 외 도안사에서 부처님 말씀 광명진언 1080독 기도와 사경을 봉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211010일 도안사 입구에 있는 포대화상 왼쪽 눈썹 위에 우담바라가 피었다. 불가에서는 전설의 꽃이며 3000년에 한 번 나타나는 상상 속의 꽃이다. 분명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다. 부처님은 만인은 불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쩌면 기도에 대해 드러나는 가피가 아니었을까. 우담바라는 선묵혜자 스님이 삼각산 도선사 주지 재임 시 2003년도 9월 대웅전에 녹색 및 방광으로 나투어 비디오로 직접 촬영한 일도 있었다. SBS 생방송 투데이에 불상에 나타난 푸른빛의 정체는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불자들이 나를 성찰하는 시간

 

영상순례를 통해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2012년 입적)“108산사순례는 한국 불교 1700년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순례법회는 순례중에 최고의 순례다라고 평가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선사 회주 밀운 스님은 염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염주 한 알은 부처님의 사리와 마찬가지다. 혜자 스님이 부처님을 모시고 와 그 손만 닿아도 부처님의 기운이 전해지듯 염주 한 알의 가치는 부적 몇 만개보다 낫다. 평생 가보로 잘 모셔야 한다며 불자들에게 강조했다.

 

그러자 어느 순례회원은 나이 70세를 바라보며 그동안 자식과 가정을 위한 소원성취를 빌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비우고 나를 찾는 기도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불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108산사를 다녔다. 자식 세 명이 서로 자기한테 달라고 조른다. 집안의 가보로 대물림할 계획이다고 털어놨다. 그 외 이런 소감도 있었다. “이루고자 하는 꿈은 다 이루었다. 스님께 감사드리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보살, “친정 엄마가 순례를 다니다가 돌아가시게 되어 그것을 물려받았고 이제는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사람, “염주 한 알이 기쁨과 슬픔, 환희심 등 9년간의 일상을 담은 소중한 추억이며 가정의 행복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무엇보다 영상순례는 몸이 아파서 시간이 없어서 그동안 여러 순례에 참가하지 못했던 사람도 영상순례를 통해 기도를 하면 불보살님 가피로 원만히 회향할 수 있을 것이다.

 

2부 불가사의한 인연 불지사리와 평화의 불

 

첫 번째 불지사리 인연

 

불교계 성물 불지사리는 세계 9대 불가사의한 일로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으며 친견 후 반드시 하나의 소원이 성취된다는 설이 전해진다. 중국 장쩌민 주석이 불지사리 친견 이후 주석직에 올랐다고 한다. 이러한 불지사리는 1981년 중국 서안 법문사에서 발견된 것이다. 법문사는 당나라 시기의 황실 사찰이다. 어느 날 세찬 폭우 속에 천둥번개가 치더니 13층 팔각 진신보탑이 세로로 두 동강 났다. 탑이 예리한 칼에 베인 듯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2/3가 찢어져 내린 것이다. 장쩌민 주석의 지시로 중국 당국은 탑을 철거하고 유물 발굴에 들어갔다. 지하궁에는 천 년간 잠들어 있던 전설의 불지사리와 함께 보물 3000여 점이 나왔다. 불지사리는 지하궁 후실 감실에 비단에 쌓인 철함 등의 오중보함에 순차적으로 안치되어 있었고, 사리는 곤문좌옥관 안에 들어있었다. 중국의 천황들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데 불지사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한 불지사리 친견법회가 단일 사찰로는 최초로 삼각산 도선사에서 봉행됐다. 인연은 우연찮게 찾아왔다. 20051111일부터 1220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부처님 진신지골사리 친견 및 지하궁 유물 한국특별전개최가 있었다. 이때 중간 4~5일의 공백 기간이 생기자 많은 사찰에서 서로 모시려고 했다. 중국측 관계자는 도선사는 지대가 높은 오르막길이라 안 된다고 했으나 기적이 일어났다. 친견법회가 열리는 동안 관할 소방서는 수십 대의 소방차를 대기시켰고, 서울시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그 후 스님은 전시를 마친 불지사리 귀향 봉송단장을 맡아 중국 서안 법문사로 향했다. 마중 나온 수많은 중국 신도들은 일렬로 서서 합장으로 맞이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의 법문사와 한국의 도선사가 형제결연을 맺었다. 중국 불교계 전체는 도선사 친견법회 행사를 제일로 인정했다는 후문이다.

 

두 번째 불지사리 인연

 

2007년 부산 MBC 다큐멘터리 아가마의 길촬영차 인도를 찾았다. 부처님 열반성지인도 쿠시나가르에 있는 본사찰에서 그곳 주지 스님으로부터 진신사리를 봉양 받는다. 스님은 부처님이 네팔 룸비니를 향한 채 열반에 들었던 점을 안타깝게 여겨 진신사리를 모시고 부처님이 태어난 곳 룸비니에 가는 원력을 세웠다. 그 여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8년 당시 네팔 정부는 왕정이 무너지고 내전을 겪는 등 혼란한 시기였다. 한국 정부 국정원은 위험하니 절대 안 된다고 했고 조계종 총무원장도 만류했다. 그러나 스님은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면서까지 300여 명 회원들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네팔 정부는 국빈 대우 수준의 대대적인 환영으로 맞이했고 현지 언론은 연일 특종 보도하기에 바빴다. 부처 탄생 2552년 만에 진신사리를 모시고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법회가 무사히 봉행됐다.

 

네팔 정부는 평화가 위협받는 시점에 찾아와 줘 내전이 끝나는 계기가 됐다며 고마워했다. 평화에 기여한 스님의 공로에 대한 답례로 평화훈장과 함께 무상으로 땅 2천여 평을 제공했다. 위치는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많은 성지 입구 우정의 평화공원 중심부이며 이곳에 아소카 석주를 재현한 3m 높이의 탄생불 석주와 한글로 기록된 평화기념비를 조성했다. 룸비니 동산에는 한국 사찰을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스리랑카, 미얀마 등 세계 각국의 불교가 들어와 있다. 그동안 어떠한 동상이나 기념비를 세우고자 해도 허락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하필 한국이냐며 다른 나라 사찰에서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평화의 불 한반도 이운은 전무후무한 일

 

룸비니에는 네팔의 영산 히말라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3천 년간 타오르는 불과 세계 53개국에서 각각 점화하여 합친 불 평화의 불이 있다. 선묵혜자 스님은 그 불 앞에 정좌하고 인류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자 불꽃에서 백의관세음보살 형상에 평화를 뜻하는 영어 Piece의 첫 글자 P의 모습이 일렁거렸다. 당시 현장에는 불교매체, MBC, KBS 등 여러 언론에서 동행 취재했는데 본지 대한뉴스 카메라에만 찰나의 순간이 찍혔고 원본은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기자는 3차례 해외 동행 취재했다.

 

스님은 이 불을 들고 1300년 전 신라 혜초 스님이 걸었던 구법순례길을 따라 순례를 떠났다. 1300년 후 21세기에 그 길을 따라나선 최초 순례다. 히말라야 설산과 티베트, 중국의 혜초 돈황굴, 타클라마칸의 거친 사막과 서해바다 수천 수만리를 걷고 걸어서 마침내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에 불꽃을 지폈다. 설산 5천 미터를 넘을 때는 산소 부족으로 고통스러웠고, 오래 시간 기차에서 몸을 싣고 달리다 과로로 링거도 맞았다. 무엇보다 국경을 통과할 때 검사대에서 평화의 불이 온전할까 마음도 졸였다.

 

201352일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에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 분단의 벽을 넘어 평화를 꿈꾸다주제로 한반도와 세계평화기원법회를 열었다. 법회 후 평화의 불을 들고 임진각 철길을 돌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늘에서 북쪽 DMZ을 향해 세로로 길게 일자로 무지개가 뜬 것이다. 무지개는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평화가 밝게 피어오르라는 부처님 가피로 느껴진다. 선묵혜자 스님은 평화의 불과 평화의 불 시비를 각 사찰과 군법당에 봉안했다.

 

3부 신행문화의 표상 108산사순례기도회

 

신행문화의 위상을 정립하다

 

선묵혜자 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창립은 앞서 밝혔던 중국 서안 법문사에 불지사리 봉송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문득 불자들과 함께 108산사를 순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저서 선묵혜자 스님과 함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를 출간하고 독자와 불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실제로 순례가 시작되었다. 20069월 삼각산 도선사에서 입제식을 갖고 첫 순례지는 통도사로 향했다. 한 달에 한 사찰씩 한 알의 염주를 모으며 108순례를 마치는 데 10여 년 가까이 걸렸다. 매달 5천여 명의 많은 사람이 움직였어도 큰 사고 없이 회향 할 수 있었다. 201614일과 15일 서울 수락산 도안사에서 거룩한 인연 아름답게 꽃피우자라는 주제로 창립 10주년 기념법회 및 108산사순례기도회 백서 고불식이 봉행됐다. 그 외 53기도순례와 108평화순례가 있다.

 

순례문화 시대의 등불이 되다

 

순례 참여 인원 54만명, 타고간 버스 11,664, 버스 비용 816천 만원, 거리는 817km로 지구 204바퀴를 돈 것과 맞먹는다. 다문화 가정 인연맺기 205, 효행상 시상 123, 108선묵장학금 223, 108약사여래보시금 59, 초코파이 보시 400여 곳에 415만개로 125천만 원에 해당, 기와 불사 27만 장, 공양미 4,240가마니, 농산물 직거래 장터 334일에 농산물 구입액 29억 원 가량, 백일홍 기념식수 46그루, 평화의 광명불 32곳 분등, 군부대에 평화불 시비 건립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가가 미처 살피지 못하는 사회 곳곳을 살펴 시대의 등불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계의 몫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주는 대목이다.

 

4부 법맥을 잇는 불가의 인연

 

다종교 집안에서 피어난 법연(法緣)의 꽃

 

선묵혜자 스님은 1952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스님이 태어난 당시는 한국전쟁 직후라 너나 할 것 없이 가정환경은 어려웠고 심신을 종교에 의지했다. 할머니는 교회에 나가는 기독교, 어머니는 성당에 다니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수행자가 참선할 때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이라는 화두가 있다. 부모 몸을 빌려 태어나기 전 그대의 본래 모습이 무엇이었냐는 뜻이다. 스님은 태어나기 전부터 중이 될 팔자를 타고나서 스님이 되었을까. 법연(法緣)의 씨앗은 이렇게 시작됐다. “중학교 갈 형편이 안 되어 걱정하던 차에 도선사에 스님으로 계시던 친척 한 분이 집에 오셔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절에 가면 한 입 덜고 한문 공부도 할 수 있으니 절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절은 초등학교 때 탄금대로 소풍 갔을 때 처음 봤어요. 그런데 절인 줄도 모르고 울긋불긋해서 무서웠죠라고 말했다. 종교가 서로 다른 집안에서 불제자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스님은 196614세 때 도선사에서 청담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그 후 1971년 청담 스님이 열반할 때 마지막 상좌였다. 스님이 출가할 당시 도선사는 전화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현대 문명의 이기를 전혀 누릴 수 없던 가난한 살림이었다.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밭도 메고, 빨래와 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다해야 했다. 하루는 물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는데 어느 보살이 다가오더니 동자스님 손 시리니 내것은 내가 빨겠습니다훗날 큰 스님이 되시겠습니다고 덕담을 건넸다. 그 보살이 바로 육영사 여사다.

 

나의 은사 청담 대종사의 법맥을 이으며

 

청담 스님은 어떤 분인가. 1941년 창종된 조계종은 광복 이후에도 왜색불교인 대처승 제도가 존재하여 승려도 결혼을 하고 아내와 자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대처승 제도를 청산하는 불교정화운동을 일으켜 한국 불교의 초석을 마련한 상징적 인물이다. 종단정화의 구체적 방안으로 도제양성·역경·포교 등 3대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조계종단을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종회의장, 통합종단 2대 종정을 지냈다. 그 외 군종법사제(軍宗法師制) 실현과 불교신문의 모태인 대한불교를 창간했다. 1961년 도선사 주지로 취임해서는 도량 중수와 호국참회원 건립 등 호국불교 사상을 펼쳤다.

 

불가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비유한다. 껍질 안의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을 줄(빠는 소리 줄), 어미닭이 껍질 밖에서 쪼는 것을 탁(쫄 탁)이라고 한다. 안팎에서 어미닭과 병아리가 함께 쪼아댈 때 병아리는 껍질을 벗고 광명을 보듯 은사와 제자는 하나의 마음을 지닌다는 뜻이다. 법맥은 이렇게 이어졌다. 은사 스님 열반 후 선묵혜자 스님은 상계동 수락산 도안사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 쪽 하늘을 바라보며 저의 스승님이 계셨던 도선사 주지가 되어 스승님의 불법을 이어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과연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14세 출가 후 35년 만인 2001년도에 도선사 주지로 취임, 2013년까지 12년 동안 연임했다. 도선사 중창불사 가운데 특히 요사채 건립은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속가에서도 중간채를 갑자기 뜯어내면 큰 재앙이 따른다 하여 꺼리는 데 부처님이 보살펴 줄 거라는 믿음으로 자신감을 갖고 헐었다. 은사 청담 스님은 도선사로 올라오는 좁은 도로를 크게 확장하는 불사를 했다. 선묵혜자 스님은 스승이 하지 못했던 요사채를 헐어 경내에 넓은 법회 장소 생기자 가슴이 뿌듯했다. 그 외 200712월 불교신문 사장 취임, 20177월 대한불교 조계종 제4대 군종특별교구장 취임 등 법맥을 이었다.

 

수락산 108평화보궁 도안사, 왜 보궁인가!

 

선묵혜자 스님은 근 40여 년 전 도안사에 오게됐다. 당시는 법당은 없었고 비만 오면 새는 자그마한 양옥기와 한 채와 임법당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평화의 불 봉안과 평화의 탑이 있고, 전국 108산사에서 담아온 성토와 벽비가 조성된 108평화보궁, 53기도순례보궁 등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평화의 불은 순례회가 네팔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내전에서 평화가 찾아 온 귀한 불이다. 그러한 공로에 대한 답례로 평화훈장과 함께 룸비니 성지에 탄생불 석주를 세웠다. 한반도로 이운한 그 불은 국내 각 사찰 및 군법당에 분등하고 군종특별교구장으로서 여러 가지 숙원사업을 펼쳤다. 그 외 불··승을 대표하는 삼보종찰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등 108사찰의 흙을 그대로 가져와 안치했다. 10년 걸려 모아진 한줌의 흙은 아무나 어느 사찰에서나 쉽게 만들 수 없는 귀하디 귀한 성토가 되었다. 중요한 순간에 100여 차례 이상 뜬 무지개는 부처님의 화현이 아닐까. WMU 58개국 세계대학생평화봉사사절단이 UN을 통해 도안사를 방문해 선묵혜자 스님에게 평화 정신을 기리는 공로패를 전달했다. WMU157개국 세계대학생 총장회의 요청으로 세계 평화의 해제정 안건과 함께 1986년 유엔에 의해 결의된 단체다. 이러한 업적과 함께 선묵혜자 스님과 불자들의 기도 원력이 모여 108평화보궁이 되었다. 오늘날 도안사는 21세기 새로운 설화가 시작된 곳이며 천년 후까지 이어질 불교 성지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주요활동 및 수상

 

선묵혜자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동안 BBS불교방송, 불교신문, 법보신문 등 불교매체를 비롯하여 공중파 방송, 조선·중앙·동아일보 및 각 일간지, 월간조선·정경뉴스·대한뉴스 등 각 언론매체에서 매우 비중있게 다뤄졌다. 수상 내역은 KBS <도전지구탐험대>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캄보디아에 한국 불교 전파 및 문화교류에 이바지한 공로로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 필리핀 대통령 직속 고등교육위원회로부터 고등교육문화대상, 팔라우 정부로부터 교육훈장, 네팔 정부로부터 평화훈장과 공로훈장을 수상했다. 그 외 대한불교조계종 종정(宗正) 표창,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과 문화부 장관 표창, 대통령 표창 및 포장, 자작시 파랑새로 제5회 윤동주문학상 대상, 대한민국 무궁화평화대상 국위선양 세계평화공헌 부문 최고대상을 수상했다. 30여 년 넘게 어르신들께 점심공양을 준비하여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주요 저서는 <사람 노릇하고 살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캄보디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 108산사순례> <그대는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가> 등 다수가 있다.

  

글을 마치며

종교적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추천

 

유네스코 등재 세계기록유산은 서적, 그림, 오디오, 비디오 등 다양한 기록물이 인류 차원에서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불조직지심체요절, 난중일기, 5·18 광주민주화운동,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등이 등재됐다.

 

선묵혜자 스님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룸비니 동산에 불지사리를 모신 탄생불 석주와 한글로 표기된 평화기념비를 조성했다. 룸비니 아소카 석주 이래 최초의 일이다. 룸비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평화의 불 한반도 이운과 국내 군부대 군법당에 밝혀 남북평화를 염원했다. 또한 북쪽에 있는 금강산 신계사 등 유명 사찰에도 평화의 불을 밝히는 서원을 세웠다. 신라 시대 혜초 스님의 구법 순례길을 따라 21세기 구법순례를 다녀 온 최초의 스님이다. 사찰 역사상 최초로 삼보종찰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등 108사찰의 성토가 조성된 108평화보궁 도안사는 21세기 불교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그 외 신행문화의 표상 108산사순례기도회, 4차 종교시대의 표상 영상순례 등 인류 평화에 힘쓰는 종교적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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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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