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신년호에 꿈을 꾸는 청춘들의 이정표로 삼고자 조수빈 아나운서를 초대했다. 50년간 현역으로 활동한 여성 앵커 ‘바바라 월터스’가 향년 93세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미국 ABC방송의 간판 앵커, 기자, 프로듀서, 인터뷰의 귀재 등 그녀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제2의 바바라 월터스가 대한민국에 있다. KBS 아홉 시 뉴스 앵커, 채널A 주말 뉴스 단독 메인 앵커 조수빈 아나운서다. 앵커, 기자, 작가, 프로듀서 등이 그녀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자기 삶을 자신이 정하고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는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는 채널A를 떠나 유튜브 ‘조수빈 TV’를 진행하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1.2005년 KBS 31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어느덧 중견 아나운서가 되었다. 아나운서의 문이 좁고 어려워서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처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는지?
꿈이라는 게 있을 때부터 아나운서, 콕 집어 뉴스앵커가 꿈이었습니다. 지금은 벤처기업가나, 좀 더 창의적인 일을 꿈꿀 걸 살짝 아쉽기도 합니다. 대학교 3학년 때 대한뉴스 인턴 기자로 처음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경험을 했는데요. 대표님께서 어린데도 존중하면서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경험이 연결되어 4학년 때 동아일보 인턴 기자를 하고 K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2. 채널A 주말 뉴스 단독앵커이며 KBS 1TV 9시 뉴스를 진행했다. 유명 뉴스 진행자는 기자 출신이 많다. 동아일보 인턴 기자 시절 경험이 도움이 됐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지?
일단 인턴을 동아일보에서 했기 때문에 같은 동아미디어그룹인 채널A라는 공간이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처음 일을 해보니 동아일보 때 교육담당이셨던 선배가 부장으로, 국회반장이던 선배가 부본부장으로 일하고 계셔서 반가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시 인턴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아서 수습기자들처럼 경찰서에서 먹고 자고 새벽 보고나 뻗치기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잠깐 국회를 경험하기도 했는데 정치의 현장을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습니다. 여기다 아나운서로 입사하고도 15년의 대부분을 보도본부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취재현장에 대해 낯설다,는 생각은 없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직접 취재기자에게 물어보며 적극적으로 일했습니다. 기자냐 아나운서냐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뉴스에 대한 감과 현장을 아우르는 능력이 앵커에겐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화면에서 보이는 아나운서의 모습과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음성에서 그 아나운서의 인격과 지식을 엿볼 수 있다. 아나운서 세계에만 존재하는 ‘아나운서 정신’과 신뢰받는 언론의 조건이 있다면?
‘아나운서의 정신’은 뉴미디어가 범람하는 현시대와 맞는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전달자’로서 역할에 충실합니다. 출연자나 콘텐츠를 돋보기에 하는 것이 전통적인 아나운서의 역할이었습니다. 다만 동시에 아나운서 말고도 연예인 스타들도 많다보니 저같이 신뢰가 생명인 장르에서 일하는 아나운서도 틈새시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빠르게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목마른 적도 있지만 이제는 ‘조수빈’을 아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신뢰’와 연결지어 생각해주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4.그동안 많은 경력을 쌓은 아나운서로 살아왔다. 기억에 남는 보람된 순간과 소중한 만남, 안타까웠던 순간을 비롯하여 뉴스 이면의 뒷이야기가 있다면?
얼마 전에 최백호 선생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실은 10년 전에도 KBS에서 인터뷰했는데 솔직히 그때는 선생님의 노래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시간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켜켜이 쌓이는 것인지, 나 정도면 세상을 잘 안다고 착각하던 30에 뵀던 것과는 그 감동이 달랐습니다. 사실 그날이 제가 채널A 앵커로서는 마지막인 날이었는데요. 40대에 불과하지만 방송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벌써 나이가 들었나 조금은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70대가 제일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30대와 40대에 같은 분을 만나보고 여운이 달랐던 것처럼 저도 나이 들어가는 것도 좋겠다, 처음으로 기대가 생긴 인터뷰였습니다.
아쉬웠던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들을 만날 때였습니다. 한번은 천안함 음모론이 방송되면서 홀로 1인시위를 벌이던 생존 장병을 길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전준영씨와는 그때 부터 지금까지 교류하고 있는데요. 그나마 오해가 많이 풀렸지만 한 때 음모론이 창궐할 때 준영씨는 저와 함께 찍은 사진도 SNS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칠까봐서요. 그 때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마냥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또한 마스크를 아버지 대신 구하기 위해 줄을 섰다 폐렴으로 사망한 정유엽 군, 부모님들은 인터뷰 후 제가 직접 대구에서 사적으로 뵌 적도 있습니다. 손정민 군 아버지를 비롯해 뉴스를 하며 만나는 분 중 가장 마음 아픈 분들은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입니다. 뉴스는 어차피 어느 시점이 지나면 더 이상 다룰 수 없게 되잖아요. 또 아무리 관심을 환기하더라도 한번 생명의 강을 건넌 자식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쓸쓸한 마음을 짐작할 때마다 저는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5. 화제를 돌려 얼마 전 작가로 데뷔했다.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 제목의 첫 에세이 출간인데 어떤 내용인가?
20대부터 모아온 글들을 엮어서 냈습니다. 사실 지금 트렌드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더 늦어지면 영영 세상에 빛을 못 볼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생각이 많이 바뀐 부분도 있고 예전 글을 보면서 아 내가 이런 경험도 했구나! 놀랍기도 했습니다. 기록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습니다. 아나운서로, 아이 엄마로 바쁘지만, 균형을 지키며 살려 노력했던 저의 청춘의 기록입니다. 특히 여성 후배들이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6. 유튜브에서 ‘조수빈 TV’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다루는 주제는 무엇인지?
다루는 주제는 ‘조수빈’입니다. 하하. 저 자체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들 관심 있는 모든 주제들을 다룹니다. 최근에는 미술 건축 가구 쪽에 관심이 많아져서 그 분야를 공부하고 스토리텔링하고 있는데 조회수가 잘 나오는 편입니다. 이제 뉴스를 그만두게 되니 당분간 힘을 좀 빼고 관심 있는 분야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 채널은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 채널이고요.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궁금한 현상들의 역사나 뒷이야기 브랜드 스토리들을 전달해드립니다.
7. 뉴스 앵커, 책 출간, 개인 채널 운영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성장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시대가 바뀌면서 어떤 아나운서가 좋은 아나운서인지 아주 빠르게 바뀐다는 걸 체감합니다. 저만 해도 9시 뉴스 앵커가 최고이던 시절에 입사했지만 예능 엠씨들이 속속 등장했고요. 종편이 생기고 유튜브라는 거대한 뉴미디어가 지상파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조급함에 길을 잃기보다는 흐름에 나를 맡기고 내 일을 사랑하다 보면 오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지금까지 방송할 줄 몰랐답니다.
8. 앞으로의 계획은?
2022년 12월 31일부로 채널A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정말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 모두 잘 해주셨고 즐겁게 일했지만 동시에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들어오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늘 숨차게 살았거든요. 당분간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면서 허겁지겁 해오던 일상들을 가지런히 모으는 작업을 할 겁니다. 유튜브를 비롯해 기본적인 사회활동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제가 쌓아온 가치를 소중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송이 있다면 다시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바라라 월터스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뉴스앵커를 오래 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뉴스 역시 제가 좀 더 새롭게 할 수 있는 형식으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인생은 달리는 것만큼 쉬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쉬어가는 타이밍이라고 판단했습니다.
9. 개인적인 질문이다. 인터뷰는 항상 어렵다. 좋은 인터뷰를 위한 원칙에 대한 조언은?
제가 경험했던 ‘아 이번 인터뷰 참 좋았다.’ 하는 경우는, 제가 상대방을 사랑할 때입니다. 30분이건 1시간 2시간이건 제 앞에 있는 인터뷰이는 제가 만나기 전부터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평생 사랑했던 사람을 딱 1시간만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눈짓 손짓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 담아두려고 하지 않을까요? ‘경청’이라는 것도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깊이 사랑할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 인터뷰에 나오기까지 쌓아온 세계, 그 시간을 존중하고 사랑할 때 좋은 인터뷰는 탄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