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 한원석 기자)=유해가 발굴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신원확인 된 호국영웅이 오늘(12월 10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난 9월, 강원도 인제에서 인식표·계급장과 함께 고인의 완전 유해를 발굴한 국유단은 유해 감식부터 유가족 시료채취, 그리고 유전자분석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하였다.
이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이 유해발굴 전(全)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기관이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국유단은 ’24.9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6·25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박갑성 하사로 확인하였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42명으로 늘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완전 유해로 발굴되는 경우는 10% 미만이며, 고(故) 박갑성 하사의 경우에는 완전 유해의 형태로 발굴되었을 뿐 아니라 인식표·계급장이 함께 발굴된 덕분에 더욱 빠르게 신원확인이 가능하였다.
국유단 전문 발굴병력은 전사연구와 참전용사 증언을 토대로 2024년 9월 11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일대에서 대부분의 유해가 존재하는 완전 유해를 발굴하였습니다. 유해의 우측 쇄골 인근에서 인식표도 함께 발굴되었다.
이후, 고인의 유해 시료를 감식하는 동시에 국유단 기동 탐문관이 병적자료를 토대로 고인의 본적지 관할 관공서를 방문한 결과 유해가 발굴된 지 약 2주 만에 고인의 친조카 박광운(1937년생) 씨를 찾아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였다.
곧바로 유해 및 유가족 유전자를 비교·분석하는 과정을 거친 끝에, 지난 11월 27일 삼촌과 조카 관계임을 확인하였다.
고인은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노전평 전투’(1951.8.9.~9.18.)에 참전 중 전사하셨다.
고인은 1924년 12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서 4남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고인은 1950년 12월,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아내를 남겨둔 채 대구 제1훈련소로 입대하였다.
이후 고인은 국군 제8사단 10연대에 배치되어 ‘횡성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 등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1951년 8월 28일 ‘노전평 전투’에서 북한군 2군단을 격퇴하던 중 장렬히 전사하셨다.
‘노전평 전투’는 1951년 8월부터 9월까지 북한군 2군단을 격퇴하고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이었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12월 10일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에서 열렸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에 유가족 대표인 친조카 박광운 씨는 “삼촌이 입대 전 농사를 지으며 힘들게 사셨는데, 이제라도 유해를 찾았으니 국립묘지에 잘 안장해드리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하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 가능하며,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6·25전쟁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시간과의 전쟁’을 하는 상황인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유단 탐문관들은 각지에 계신 유가족을 먼저 찾아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고 계시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계 등으로 방문이 어려우신 유가족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 (오! 6·25)로 언제든 연락 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