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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료

설탕을 통해 본 소비문화 변천

왕실 약재 · 최상류층의 사치품에서 현대는 설탕 NO 마케팅


식탁 가득 차려진 케이크, 사탕, 팥빙수, 음료수 등 달콤한 음식을 보면 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매혹적인 단맛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단맛은 사탕수수와 사탕무의 수액을 모아 끓이고 여러 차례 걸러 다른 성분과 색을 없애고 말려서 순수한 결정체로 만든 설탕이다. 사탕수수가 설탕으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유럽제국은 세계무역의 주도권을 다투고, 조선에서는 왕실 약재로 또 최상류층의 사치품으로 사용되었다. 설탕은 세계화, 근대화, 산업화가 농축되어있는 상품이다. 우리나라는 130년 전만 해도 설탕 소비량이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는데 현대는 넘쳐나는 소비에 건강을 위해 설탕 NO 마케팅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설탕의 위상, 왕실의 귀한 약재로 쓰여 

인류는 지금처럼 운송 수단이 발달하기 전 단맛을 생산하는 방식은 자연환경과 무역 조건에 따라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달랐다. 벌집에서 꿀을 채집하거나, 단풍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거나, 곡물로 엿을 만들거나,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어 단맛을 냈다. 19세기까지는 사탕수수 재배지인 아열대 지역이나 이곳과 자주 교역하는 지역에서만 설탕으로 단맛을 내는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사탕수수가 열대작물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재배할 수 없었다. 사탕무도 전파되지 않았기에 설탕은 전량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서 수입했다. 그래서 왕실의 귀한 약재,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품, 최상류층의 사치품으로 그 위상이 높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왕후가 병이 나 사당(沙糖. 설탕)을 먹고 싶어 했는데 구할 수 없어서 먹지 못하고 죽었다. 훗날 소헌왕후의 아들, 문종이 설탕을 구하게 되자 모후의 제사상에 눈물을 흘리며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왕실에서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품이었다. 그래서 왕실에서는 몸이 쇠약해졌을 때 원기를 돕는 귀한 약재로 쓰였다. 또한 왕이 병든 신하에게 하사하면서 왕이 신하를 얼마나 아끼는지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하사품이었다. 그 외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을 후하게 접대하는 접대품이기도 했다.

 

왕실만이 아니라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고위 관료들은 개인적으로 설탕을 가지고 와 귀한 구급약으로 사용했다. 허균은 친구에게 그대 어머님 병환이 너무 오래되니 마치 내가 우리 어머니 병환을 시중들던 때와 같이 걱정되는 마음이 드네. () 한 덩어리를 마침 구했기에 이생(李生)이 가는 편에 부치니 식사 후에 드시도록 하게라면서 보냈다. 1700년에 지어진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약재의 독을 해독할 때나, 잘못하여 물건을 삼켰을 때 혹은 두창이 났을 때 설탕을 다른 약재와 함께 복용하라고 하였다.

 

설탕의 위상, 한 나라의 문명 수준을 판단하는 지표 

개화기 당시 서구인들은 정제된 백설탕 소비 여부를 가지고 그 나라의 문명 수준을 판단하는 지표로 삼았다. 자신들은 설탕 넣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는 데 대해 자부심과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왕실에서는 서구인들을 궁궐로 초대하면서 그들을 위해 설탕에 버무린 호두, 커피, 사탕, 과자, 잎담배, 샴페인, 포도주 같은 음식을 차려 융숭하게 접대했다. 또한, 설탕을 넣은 과자는 왕실이 어린 학생들에게 베푸는 시혜품, 하사품이 되었고 대내적으로 경축할 때 간식이나 오찬으로 과자를 하사했다.

 

1900년대 초, 조선의 문명 개화론자들은 기술 문명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풍속까지 서양화하는 것이 개화라 판단하고 세계 각국의 문명 수준을 국민 1인당 설탕 소비량으로 계량화하여 그 나라의 문명 수준을 측정할 수 있다고까지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갓난아기에게 주는 우유에 생후 개월 수에 따라 백설탕을 첨가할 것을 권했다. 이러한 서구 중심적 설탕 문명화·영양 담론은 해방 전후까지 한국 사회에 영향을 주어 아동들의 간식 필요성이 다양하게 강조되었다.

 

1930년대 중반까지 간식으로 추천한 것은 대개 과자나 과일이었다. 젓을 뗄 때부터 설탕을 넣은 과즙을 주거나 과자를 주기 시작했다. 과자는 일본 과자와 양과자가 대부분이었다. 학자마다 12세씩 나이 차이가 있지만 대개 젖을 뗀 23세 아이에게 웨하스, 카스텔라, 비스킷, 슈크림, , 과실즙(주스), 우유, 토마토를 주도록 했다. 5세가 되면 모나카, 캐러멜, 양갱, 센베이, 양과자, 군고구마(야끼이모)과자, , 좋은 아이스크림, 우유, 과일을 권장했다. 6세에는 만주, 모찌, 초콜릿, 우유를, 7세이면 아무것을 먹여도 좋다고 했다. 과일도 그냥 주기보다 설탕을 탄 과일즙(주스)을 주든지, 설탕에 절이거나 과일로 만든 과자가 더욱 좋다고 했다.

 

조선 전통 음식에 꿀과 엿 대신 설탕 사용 증가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2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개항한 뒤 조선으로 이주한 영세한 중국인과 일본인이 설탕을 넣은 자국의 고유 음식을 상류층 조선인에게 판매하여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10년대 무렵부터 조선의 전통 음식 떡·한과 같은 병과류와 음료에도 꿀이나 엿 대신 설탕을 사용하였다. 1920~1930년대가 되면 꿀이나 엿을 숫제 사용하지 않던 육류, 생선류, 찬류, 김치류 등에 설탕을 넣는 이른바 신식요리법이 개발되었다. 요리법을 개발한 생활 개선론자가 서구식 근대화를 지향하면서 서구인의 기준에 맞춰 매운맛이 영양가가 적고 자극성이 강해 건강에 해롭다고 꺼렸기 때문이다.

 

1950년대 정부 제당업 육성정책과 함께 설탕 소비량 증가 

1950년대는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 물자를 바탕으로 제분(製粉), 제당(製糖), 면방직(綿紡織) 공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한국은 밀가루, 설탕, 면직물을 수입했으나, 미국이 원조한 소맥(小麥, ), 원당(原糖), 원면(原綿)을 활용한 삼백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수입 대체에 성공했다. 그중 정부가 제당업 육성정책을 펴면서 설탕 공급량이 증가하자 설탕이 매운맛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는 실향민, 월남민과 도시로 이주한 이농민이 설탕을 넣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을 개발했다. 떡볶이, 낙지볶음, 제육볶음, 비빔국수(냉면) 같이 매콤달콤한 요리법이 다양하게 등장하였다. 설탕이 생활필수품이 되며 오늘날에는 한국인 주식인 쌀의 1/3에 달하는 설탕을 먹고 있다고 한다. 설탕을 과다 섭취하게 되면서 비만, 당뇨, 충치 같은 성인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경계하게 되었다. 급기야 정부까지 나서서 20164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최근에는 설탕 제로 마케팅이 트렌드가 되었다.

 

21세기는 설탕과의 전쟁 

설탕은 지난 백여 년 동안 우리 식생활에서 사회적 위상이 가장 획기적으로 높아진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 , 메이플 시럽처럼 단맛을 내는 경쟁상품에 견주어 운반이 쉽고, 유통기한이 길며,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또한 설탕 가운데 정제당의 경우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려서 현지화하기 쉬웠다. 이러한 장점 덕택에 설탕은 세계 각지에서 생산·유통·소비되었다. 설탕 소비 증가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도 음식을 먹지만, 즐기기 위해서도 먹는다. 이 가운데 단맛은 사람들이 가장 갈구하는 맛이다. 문제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단맛을 좋아한다고 해도,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는지로 소비량이나 소비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음료와 주류 업계에서 설탕 제로 마케팅 바람이 계속해서 부는 추세다. 다이어트와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 가치관의 변화에 발맞춰 몸에 안 좋다며 설탕을 빼는 것이다. 롯데칠성음료는 1989년 출시된 장수 음료 밀키스를 열량 없는 제품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일화는 지난 1982년 첫선을 보인 탄산음료 맥콜을 열량 없으므로 재단장한 버전을 출시했다. 웅진식품은 대표 주스 브랜드인 '자연은' 시리즈에 열량 없음 제품을 추가로 선보였다. 동원F&B1980년 출시된 유산균 음료 쿨피스톡을 열량 없음으로 재단장한 쿨피스톡 제로’ 2종을 출시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설탕 제로라고 하여 살도 찌지 않고 건강에도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식약처는 100mL4kcal 미만일 때 0kcal라고 표시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제로 마케팅이 가능한 것이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단맛을 내는 것은 설탕 대체재 아스파탐, 수크랄로스같은 인공 감미료가 대신하는 것이다. 단맛은 나지만 당이 전혀 없고 체내에 축적이 안 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건강과 체중에 큰 영향이 없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최근에는 비영양 감미료가 설탕보다 살을 더 찌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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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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