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지하철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 있다. 왜냐하면 지하철의 깊이가 가장 깊고 또 마치 궁전과도 같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무릇 평양에 오는 외국손님은 평양은 물론 북한 그 어디에서나 공용버스나 택시를 마음대로 탈 수 없다. 그러나 평양에 오는 관광객이나 외국손님은 지하철만은 참관할 수 있고 탈 수 있다. 그만큼 평양지하철은 북한의 자랑거리이고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평양지하철은 언제 누가 건설했는가? 오랫동안 북한인들은 물론 중국인들도 평양지하철은 북한의 기술과 로력으로 건설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하다. 1966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국무원에서는 김일성 주석을 비밀리에 북경지하철 건설현장으로 안내했다. 그때 지하철공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얼마 안 되어 김일성 주석은 모 주석에게 평양에다 지하철을 건설하여 줄 것은 부탁했다. 모택동은 통이 크기로 당대에 두 번째라면 섭섭할 위인이다. 그는 김일성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북경의 지하철공사가 중단되었다. 그 지하철건설에 뛰어들었던 철도병들이 모두 평양으로 달려갔다. 공정기술 일꾼들도 들어갔다. 건설자재들을 실은 차량들이 장사진을
백두산 천지가에 일찍이 종덕사란 절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다. 종덕사는 바로 천지물이 흘러나오는 천지 동북쪽 평평한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빈자리만 남아 쓸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옛적에는 향연이 그치지 않았다. 속명 팔괘묘라고 불리운 종덕사는 원래 200m2 남짓한 팔각형 절이었다. 이 절은 홍송널판자로 지었는데 지금은 그 형태를 더는 보아낼 수 없다. 다만 여덟 개의 방석돌 등이 원 모양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절의 벽은 세 겹으로 되었는데 바깥 벽은 길이가 같지 않은 팔각형 모양이다. 사이 벽은 사각형 모양이고 안쪽 벽은 정팔각형 모양이다. 절의 서남쪽 몇 미터밖에 온돌을 놓은 토목결구의 침방이 하나 있었다. 1986년 전까지만 해도 종덕사의 이름이 분명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숭덕사(崇德寺)로 부르고, 어떤 이들은 존덕사(尊德寺), 송덕사(宋德寺)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던 1986년 9월에 절터에서 종덕사(宗德寺)라고 쓰여진 종 조각이 발견된 후부터 종덕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종덕사가 세워진 년대에 대한 해답도 각이하다. 어떤 기재에는 1929년에 지었다고 하지만 일설은 1931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