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은 공간과 구도, 거리 등을 무시하고 새로운 회화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유명하다. 1953년 마산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의 그림은 초기 자연묘사 위주의 인상파 계열의 작품을 그리다 추상성을 모방하고 해석하는 작품이 등장한다.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은회색이라는 독창적인 색감을 구현한다. 1970년 국전에 출품한 ‘과녁’이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도 나오는 작품이 된다. 이어 미국유학 시절 객관적인 리얼리티를 구현한 작품을 선보이다가 70년대 후반 도예가로도 변신한다. 80년대에는 벽화제작에 이어 판화작업에도 영역을 넓혔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꽃과 여인’을 주로 그리기 시작했다. 청와대, 사법연수원, 대검찰청,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있으며 현재 뉴욕과 서울에 스튜디오를 갖고 활동 중이다.
김종수 화백은 이런 도시 나무를 빗대어 현대 도시인의 상처를 말하며 치유하는 방법을 회화적인 시각과 조화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까지 26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1년 뉴욕 아트엑스포등 외국에서도 전시했고,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과 신기회 회장직,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민국 회화제 대표다.
김종수 화백은 이런 도시 나무를 빗대어 현대 도시인의 상처를 말하며 치유하는 방법을 회화적인 시각과 조화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까지 26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1년 뉴욕 아트엑스포등 외국에서도 전시했고,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과 신기회 회장직,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민국 회화제 대표다.
김종수 화백은 ‘나무 작가’로 유명하다. 김 화백의 나무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복잡한 도시 속에서 이식된 채 길들여지고 있는 나무다. 자기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주변 풍경과 어울리고 강제로 다듬어지고 가꿔지는 것이다.
한국 사실주의 화가의 거장인 화가 구자승은 홍익대 회화과, 동 대학원, Ontario college of Art 졸업했다. 세계현대리얼리즘 회화전 외 550여회의 초대전 출품, 개인전 21회와 부부전 13회를 열었으며 몬데칼로 국제 현대미술제 조형 예술상 및 Salong Viole 은상 등을 수상했으며, 옥조근정훈장(노무현 대통령)을 수여받았다. 역대 대통령 초상화와 삼성 이병철·이건희 회장·이홍구 총리등 초상화를 제작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신미술회 고문이며 상명대 명예교수로 있다.
고승관은 한국 공예분야 대표적인 작가로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0년 홍익대학교 공예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 시절부터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해 37년간 홍익대학교에서 강의와 작품활동을 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기획위원장(1999), 심사위원장(2003), 조직위원(2005), 운영위원장(2007), 초대작가(2009) 등을 역임했으며, 2000년 국민훈장목련장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미술인상 본상을 받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최우수선수(MVP)에게 수여한 금관 백상크라운을 제작한 바 있으며, 이 금관은 스위스 IOC올림픽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제주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제주 최대 농·수·축산물 민속 장터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으로 향했다. 제주인의 삶과 100여 년의 역사 속 훈훈한 정이 살아있는 만남의 장터이다. 매월 2일, 7일에 장이 선다. 장터 운영시간은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오후 7시에 끝난다. 제주공항에서 10분 거리, 여객선터미널에서는 20분 거리이다. 대형 주차장이 시장 내에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제주시 민속오일장의 유래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은 조선말 보부상의 상거래 장소로 이용해오다 1905년 현재의 관덕정 앞 광장에서 개장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1930년대에 건입동 지역으로 이설되었다가 1950년 6·25 때 피난민 막사를 시장터로 내주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당초 음력 2일과 7일 장이 서곤 했으나 지금은 양력 2일과 7일에 장이 열린다. 1일 평균 이용객은 평일 약 오만명, 공·휴일에는 약 십만 명이 이용하고 있다. 22개 품목의 1,004개의 점포가 입점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는 사랑하길 코너는 할머니 장터, 채소류, 반찬류, 싱싱과일, 건강원 등, 대박나길 코너는 한빛꽃농원, 쁜쟁이 모자, 예소나, 남성하이패션,담양돗자리 등,
부부의 인연은 무엇보다도 특별한 인연입니다. 각자의 가문과 가풍이 다르고 몸속의 유전자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그런 상태에서 하나가 되어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백년해로하는 것은 수월할 것 같지만 어려운 점이 많을 때가 있습니다. 서로가 마음공부 없이는 힘든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고 스승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자연 속에서 관찰, 생각도 하지 않고 좋은 스승을 그냥 보고 넘어갑니다. 부부의 인연도 자연 속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부부의 만남은 한사람이 소나무라면 한사람은 참나무의 성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 주변의 산을 보면 여러 나무들이 어울려 산을 지킵니다. 그 속에 소나무는 뿌리에서 나오는 독성으로 곁을 내주지 않는 식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참나무에게만은 곁을 내어주며 함께 자랍니다. 이렇게 함께 살 수 있는 이유는 소나무는 볕을 많이 받아야 자라지만 참나무는 볕을 적게 받아도 살고 또 소나무 옆에서 소리없이 자라다가 소나무보다 키가 크다 싶으면 옆으로 가지 뻗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부도 서로를 배려하며 인내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자연 속의 소나무와 참나무를 생각하며 내가 너무 커 소나무의 볕을
(대한뉴스 혜운기자)=2023년 7월 8일 토요일 12시 30분 한양대학교 한양종합기술연구원 6층 대강당에서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성형외과학교실 5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열린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성형외과는 과거 1972년 한양대학교병원 개원과 함께 일반외과의 한 분과로 진료를 시작하여 1973년 류재만 교수의 부임과 함께 본격적으로 성형외과 진료를 시작하였다. 국내에서 두 번째 성형외과 개설에 해당될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자체 조사 결과 2023년까지 97명의 전문의 취득이 이루어졌다. 올해는 성형외과 개설 진료를 시작한 지 반세기를 맞이했다. 성형외과란 미용성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의도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피부와 근골격에 결손 또는 변형이 있을 때, 그 형태와 기능을 개선해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신체의 단순한 교정 수술이 아니라, 신의 창조물인 인체를 예술적 감각으로 아름답게 복원하는 특별한 의학이다. 성형외과학교실 김연환 주임교수는 초대의 글을 통해 “그동안 다양한 경험들과 수많은 노하우가 여러 선후배님을 통해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축적되고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이번 행사
박수근 작가는 서민을 주제로 한 절제된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 주제에 있어서 그가 실제로 체험하였던 주변의 가난한 농가의 정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생활 정경을 주로 담았다. 또한 이러한 주제에 풍부한 서정을 가미해 일관성 있게 추구했다. 그리고 표현 방법에 있어서도 향토색 짙은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했다.
천경자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전남여고를 거쳐 1944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광주여고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때부터 본명인 옥자 대신 스스로 지어 붙인 경자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천경자의 작품세계는 1942년부터 1969년까지 삶과 죽음 등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보여주고 있고,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는 자신의 꿈과 낭만을 실현하려는 시기였다. 특히 꽃과 여인을 소재로 환상을 표현하거나 해외여행에서 느낀 이국적 정취를 통해 원시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고 있다.
천경자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전남여고를 거쳐 1944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광주여고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때부터 본명인 옥자 대신 스스로 지어 붙인 경자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천경자의 작품세계는 1942년부터 1969년까지 삶과 죽음 등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보여주고 있고,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는 자신의 꿈과 낭만을 실현하려는 시기였다. 특히 꽃과 여인을 소재로 환상을 표현하거나 해외여행에서 느낀 이국적 정취를 통해 원시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고 있다.
장욱진 작품에 드리운 단순성과 추상성을 두고 혹자는 서구의 화가인 파울 클레 등의 영향을 말하기도 한다. 장욱진은 해방 이후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람·아이·가축·마을·새들은 극히 단순화된 구도와 배치 속에서 동화와도 같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냈다. 그의 그림에는 서구미술에서 중시했던 명암, 투시법, 화면분할과 같은 요소들이 일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림의 주된 대상들은 평면적인 공간배치 속에서 평화롭게 존재하며 사람과 자연은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처럼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장욱진 작품에 드리운 단순성과 추상성을 두고 혹자는 서구의 화가인 파울 클레 등의 영향을 말하기도 한다. 장욱진은 해방 이후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람·아이·가축·마을·새들은 극히 단순화된 구도와 배치 속에서 동화와도 같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냈다. 그의 그림에는 서구미술에서 중시했던 명암, 투시법, 화면분할과 같은 요소들이 일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림의 주된 대상들은 평면적인 공간배치 속에서 평화롭게 존재하며 사람과 자연은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처럼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소장 경위 :이중섭이 중학시절부터 소그림을 그린 배경에는 프랑스 야수파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의 업적을 적극적으로 동경했던 바가 크다. 이 흰소 역시 빠른 필선, 다부진 골격과 상기된 눈빛과 붉은 코가 특징이다. 흰소는 한국인을 상징한다고 한다.감정 소견 : 감정소견 미8군 CID 한국인 감찰관 홍창덕씨가 양화가 이상우(54년 당시 미술품 재료상)씨로부터 미군부대에서 미술재료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해결해 준 답례로 받았던 그림이다. 현 소장자는 그의 아들로부터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