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 글 박현 기자 |사진 연합뉴스 맥주업체간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4월 롯데 ‘클라우드’가 출시되며 ‘오비’와 ‘하이트’로 양분된 맥주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또한 주세법이 개정되며 소규모업체들이 제조하는 하우스맥주의 외부 유통·판매가 가능하게 됐다. 이에 수입산 맥주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4조원 규모를 넘는 국내 맥주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롯데주류가 프리미엄맥주 ‘클라우드’를 출시하며 맥주시장 진출의 첫 출사표를 던졌다. ‘클라우드’의 등장이 종래 ‘오비’와 ‘하이트’의 맥주 양강체제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역시 4월 종래 소규모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업장 안에서만 판매하던 하우스맥주를 외부에서도 유통·판매할 수 있도록 주세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맥주 선택폭이 한층 넓어지게 됐다. 게다가 수입산 맥주의 시장점유율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국내 맥주시장은 바야흐로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클라우드’, 맥주 양강체제에 도전 롯데주류가 출시한 클라우드는 유럽의 홉과 효모를 사용해 만든 정통 독
[인터넷 대한뉴스] 글 오아름 ‘경쟁은 인생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 시대에서의 경쟁은 그야말로 필수가 되어버렸다. 특히, ‘이기느냐, 지느냐’ 기로에 선 기업들의 불꽃 튀는 경쟁은 늘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들은 ‘라이벌’이란 이름으로 울고 웃으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주역들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지나고 어느덧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여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캠핑이다. 캠핑은 누구에게나 다 친숙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수많은 캠핑업계 중에서도 코베아와 버팔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국민캠핑업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국내 유일 아웃도어 토탈브랜드, ‘코베아’ ‘인화지선, 근면지선, 기술지선, 결과지선’이라는 사훈 아래 노사협력과 단결을 강조하고 있는 코베아는 창사 이래 지금까지 갈수록 다양해지고 고도화되는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고, 더욱 철저하고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더 큰 고객 만족과 더 높은 서비스 품질을 실현하고 있다. 코베아는 1987년 석유스토브 위주였던 시장에 가스스토브를 선보이며
[인터넷 대한뉴스] “너 연변 다녀왔다면서?” “응” “그럼 연변 가서 순이냉면 먹어보았나?” “물론이지, 순이냉면 먹어보지 못하면 연변에 갔다고 할 수 없지…”. 그렇다. 연변에서 순이냉면이라 하면 이발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이발이 갓 나기 시작한 어린애들도 한 번쯤은 먹어본 냉면이다. 그래서 순이냉면을 모르면 연변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는 자연히 거짓말로 된다. “올 초까지 순이냉면은 연길시에만 11개의 분점(체인점)을 냈습니다. 크기는 2만 3천여 평방이고, 일 냉면판매량은 3만 그릇을 초과합니다”. 순이냉면집 주인 조광호 씨의 자랑이다. 일 판매량이 3만여 그릇이면 밀가루가 약 3만근, 닭 알이 3만개, 소의 뒷다리고기가 800근이 나간다는 얘기다. 연변이라는 이 작은 산골에서는 엄청난 만패량이다. 연길시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냉면집이 있다. 그중 력사를 자랑하는 냉면집만 해도 10여 개나 된다. 그런데 2009년에 연길시의 외딴곳, 외딴집에서 ‘순이냉면'이라는 간판을 달랑 내건 순이냉면이 내로라하는 냉면집들을 제치고 판매량 1위를 기록했으니 아마 이런 일을 두고 “후에 난자가 먼저 된다”고 하는 걸까? 표연히 떠오른
[인터넷 대한뉴스] “임금님의 귀가 나귀 귀와 같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고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찌 복도장이 한 사람뿐이겠는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하여 안달이 난 사람들이 가득하다. 요즘 연길의 미식가들은 대패집 생삼겹살 구이가 으뜸이라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공공연히 소문을 내고 다닌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소문을 달고 다니는지를 알아보려고 대패집 생삼겹살 구이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가게주인은 분명 산전수전을 다 겪은 로련미가 철철 흐르는 중년의 부인인 줄 알았는데 웬걸 세월에 그을린 테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새파란 젊은 여성이 주인이랍시고 맞아준다. 찾아온 연유를 대충 설명하니 잘 구운 삼겹살처럼 기름이 찰찰 넘치는듯한 피부를 가진 주인 부부가 먼저 삼겹살부터 먹어보고 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공짜로 대접받으면 마음이 약해 빈말로라도 한 가득 칭찬을 해주는 습관이나 오늘만은 실속있게 말해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죽여준다!”고 할까 구수하고 쫄깃한데 거기에다 새콤달콤한 김치말이 국수까지 받쳐나오니 이걸 먹지 못하고 죽었으면 어찌할 뻔했겠는가 싶다. “어려서부터 음식을 만
[인터넷 대한뉴스] “임금님의 귀가 나귀 귀와 같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고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찌 복도장이 한 사람뿐이겠는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하여 안달이 난 사람들이 가득하다. 요즘 연길의 미식가들은 대패집 생삼겹살 구이가 으뜸이라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공공연히 소문을 내고 다닌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소문을 달고 다니는지를 알아보려고 대패집 생삼겹살 구이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가게주인은 분명 산전수전을 다 겪은 로련미가 철철 흐르는 중년의 부인인 줄 알았는데 웬걸 세월에 그을린 테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새파란 젊은 여성이 주인이랍시고 맞아준다. 찾아온 연유를 대충 설명하니 잘 구운 삼겹살처럼 기름이 찰찰 넘치는듯한 피부를 가진 주인 부부가 먼저 삼겹살부터 먹어보고 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공짜로 대접받으면 마음이 약해 빈말로라도 한 가득 칭찬을 해주는 습관이나 오늘만은 실속있게 말해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죽여준다!”고 할까 구수하고 쫄깃한데 거기에다 새콤달콤한 김치말이 국수까지 받쳐나오니 이걸 먹지 못하고 죽었으면 어찌할 뻔했겠는가 싶다. “어려서부터 음식을 만
[인터넷 대한뉴스] 하남다리 즉 연길교는 지난 2010년 3월에 건설하기 시작해서 그해 12월에 개통됐다. 길이가 210m, 너비가 51m인 하남다리의 투자금액은 1억(인민페)원이다. 하남다리가 개통되던 날 연길시민들은 너나없이 기쁨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그만치 하남다리는 연길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조선족자치주의 경제 및 사회발전의 척도로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안주해왔기 때문이었다. 하남다리는 선통원년 즉 1902년 2월에 처음으로 건설됐다. 변무공정국(务工程局)에서 감독하고 건설한 이 다리를 연평교라고 불렀다. 연평교는 나무로 건설했는데 길이가 240m, 너비가 6m이었다. 지금의 다리보다 길이가 약 30m가 짧았다. 연평교를 건설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다음과 같다. 1900년대 초에 연길을 비롯한 룡정, 화룡 등 529개의 조선족마을에 7만여 명의 인구가 있었다. 당시에 연길시 푸르하통 하남안에는 조선족들이 개간한 논이 무연하게 펼쳐졌지만, 튼튼한 다리가 없어 수확물은 하북으로 운반하는데 몹시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다리를 놓을 필요성이 간절했으며, 1900년 7월에 짜리러시아군이 훈춘을 거쳐 연길로 들어올 때 소영에 주둔
[인터넷 대한뉴스] 글 김준호 기자 19일 새벽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 등을 포함해 3명이 구속됐다. 16일 전남 진도에서 8시 48분경에 발생한 세월호의 침몰사고는 사고대처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승객의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사고시 30분 동안 승무원들이 초기대응만 잘했어도 이렇게 인명피해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안전 불감증과 비상시 대응방식, 재난관리 지휘체계의 문제를 떠나 사고발생 이후 30분, 이른바 골든타임 시간대에 벌어진 촌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의 허물을 탓하기보다는 조속히 배가 인양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기 바라는 것이 도의일 것이다. 본지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사고발생 이후 매체를 통해 전해진 가슴 아픈 사연과 탈출 및 구조과정에서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마음을 대신하고자 한다.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탈출을 도우다 끝내 사망했다. 구조된 안산 단원고 김수빈군은 “배가 기울면서 3층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승무원 누나가 뛰어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 내려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인터넷 대한뉴스] 하남다리 즉 연길교는 지난 2010년 3월에 건설하기 시작해서 그해 12월에 개통됐다. 길이가 210m, 너비가 51m인 하남다리의 투자금액은 1억(인민페)원이다. 하남다리가 개통되던 날 연길시민들은 너나없이 기쁨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그만치 하남다리는 연길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조선족자치주의 경제 및 사회발전의 척도로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안주해왔기 때문이었다. 하남다리는 선통원년 즉 1902년 2월에 처음으로 건설됐다. 변무공정국(务工程局)에서 감독하고 건설한 이 다리를 연평교라고 불렀다. 연평교는 나무로 건설했는데 길이가 240m, 너비가 6m이었다. 지금의 다리보다 길이가 약 30m가 짧았다. 연평교를 건설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다음과 같다. 1900년대 초에 연길을 비롯한 룡정, 화룡 등 529개의 조선족마을에 7만여 명의 인구가 있었다. 당시에 연길시 푸르하통 하남안에는 조선족들이 개간한 논이 무연하게 펼쳐졌지만, 튼튼한 다리가 없어 수확물은 하북으로 운반하는데 몹시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다리를 놓을 필요성이 간절했으며, 1900년 7월에 짜리러시아군이 훈춘을 거쳐 연길로 들어올 때 소영에 주둔
[인터넷 대한뉴스] 글 김준호 기자 19일 새벽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 등을 포함해 3명이 구속됐다. 16일 전남 진도에서 8시 48분경에 발생한 세월호의 침몰사고는 사고대처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승객의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사고시 30분 동안 승무원들이 초기대응만 잘했어도 이렇게 인명피해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안전 불감증과 비상시 대응방식, 재난관리 지휘체계의 문제를 떠나 사고발생 이후 30분, 이른바 골든타임 시간대에 벌어진 촌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의 허물을 탓하기보다는 조속히 배가 인양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기 바라는 것이 도의일 것이다. 본지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사고발생 이후 매체를 통해 전해진 가슴 아픈 사연과 탈출 및 구조과정에서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마음을 대신하고자 한다.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탈출을 도우다 끝내 사망했다. 구조된 안산 단원고 김수빈군은 “배가 기울면서 3층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승무원 누나가 뛰어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 내려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인터넷 대한뉴스] 취재 이건륭 대한뉴스 길림성 지사장 일본이 중국대륙과 조선반도를 침략하여 중조 두 나라 인민들에게 저지를 만행은 실로 몸서리가 친다. 하지만 얼굴에 철갑을 두른 일본은 적반하장으로 중국대륙과 조선반도에 문명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일본은 지어 위안부강제징용과 남경대학살마저도 없었던 일처럼 지껄인다. 고금중외에서 일본처럼 철면피한 나라를 찾아볼수 없다. 만약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터뜨린 것을 두고 이는 일본에 평화와 문명을 가다준것이라고 하면 일본은 어떤 얼굴일가? 그러나 일본침략자들은 중국에서 원자탄을 터뜨린 것보다도 더욱 악랄하고 더욱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 만행은 원동국제법정에 기소되지 않았기에 아베가 무근거한 사실이라고 게거품을 물지는 모르겠지만 만행에서 죽은 사람은 핵복사로 죽은 일본인보다도 많다. 바로 관동군소속 제731부대, 제100부대, 그리고 에이부대의 세균무기실험대상으로 죽은 사람들이다. 원폭에서 죽은 일본인은 21만이지만 중국에서 세군무기에 죽은 사람은 더욱 많다. 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미국은 이씨이시로(石井四Ų